▲tvN <미스터 션샤인>에도 나온 '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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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은 『독립신문』 재직 중에 국문동식회(國文同式會)를 창설하고 본격적으로 국문을 연구하였다. 신문발행과 더불어 설치한 국문연구는 그의 필생의 과제가 되었다. 이 기구는 정부가 1907년 학부 안에 마련한 '국문연구소'의 탯줄 역할을 하였다.
신문사와 독립협회가 강제로 해체된 뒤에도 주시경은 좌절하거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나라의 운명이 점차 위태로워 지면서 그는 더욱 분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23살이던 1898년 9월에 신문사를 떠난 후 이듬해 10월부터 3개월 동안 서울 남대문 근처에 사옥을 둔 『제국신문』 기자로 들어갔다. 1898년 8월 10일 일간지로 창간된 이 신문의 원명은 『뎨국신문(帝國新聞)』으로, 뒷날 민족대표 33인 중의 일원인 이종일이 창간하였다.
『뎨국신문』 은 1903년 7월 7일 제호를 『제국신문』으로 변경했다. 이 때부터 관보는 한자로 보도했다. 『제국신문』은 중류 이하의 일반 대중과 부녀자를 주된 대상으로 삼아 읽기 쉽고 재미있는 신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사람들은 『황성신문』을 수신문이라 부르고, 『제국신문』을 암신문이라 하였다.
이 신문은 1907년에 지면을 대판으로 확장하면서 이인직(李人稙)의 소설〈혈(血)의 누(淚)〉 하편 1장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이 신문은 초기부터 줄곧 재정난으로 시달리다가 1910년 8월 2일 그 어려움을 이기지 못 하고 스스로 문을 닫았다. (주석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