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마스크를 쓴 한 여성이 시드니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드디어 개학 날이다.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나부터도 쓰지 않았다. 학기 시작을 앞두고 호주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은 1월 중순부터 학부모들에게 코로나19 관련 안내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DET(The Department of Education and Training Victoria, 한국의 교육부)에서 코로나19에 관한 관련 지침과 주의사항 등을 학교에 보내면 교장은 바로 학부모들에게 전했다. 학교의 차분한 대응과 정부에서 전달하는 정보들을 신뢰했으며 덕분에 불안하지 않았다.
[2월 27일] 한국 이민자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호주 전역에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하면 당장 먹을 게 동날 거예요. 제발 물건 좀 사다 놓으세요."
한국에서 31번 확진자를 기점으로 코로나19 발병 사례가 늘어나자, 이제는 한국인 이민사회가 들썩였다. 2월 말부터 나를 아끼는 주변 지인들은 쌀과 기본 식자재를 쟁여 놓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시시각각 들려오는 코로나19 관련 소식들이 넘쳐난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지구촌 세상이니 한국의 가족이나 지인의 연락 또는 SNS를 통해 정보가 마구 쏟아진다. 지인 중에는 각종 한국인 커뮤니티에 코로나19 이야기가 넘쳐 오히려 불안이 가중되고 피로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호주는 2월에 접어들며 코로나19 확산 저지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중국발 외국인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하는 '초강수'를 두는가 하면, 확진자가 늘고 있는 대구·청도에 대해서도 여행경보를 4단계 중 3단계까지 높였고, 한국 전역에 대한 경보는 2단계로 상향했다.
일각에서는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 사건이 일어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멜버른의 한 병원에서는 아시아계 의료진의 진료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고, 시드니의 한 사립학교에서는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을 이유로 한국계 학생을 기숙사에서 퇴거(2주 자가격리)시켰다. 호주 인권위원회(AHRC)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중국계 이민자를 향한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다며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나는 마트에서 식료품을 잔뜩 사는 대신, 단골 카페에 가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어떻게든 일상을 평온하게 지켜내고 싶다.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3월 4일] 지인에게 쌀 한 팩을 샀다
3월 1일(현지시각), 호주에서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왔다. 이틀 뒤 크리스천 포터 법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생물안보 통제 명령권' 확대 방침을 밝혔다고 한다. 원래 생물안보법(Biosecurity Act)은 보건에 위험이 되는 외국인 입국자를 격리할 때의 근거인데, 이를 코로나19 감염 확산에도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학교·백화점·기업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출입을 통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언니, 쌀 구매 안 했죠?"
오전 8시 개장 시간에 맞춰 울워스(Woolworths, 호주의 대형마트 체인)에 쏜살같이 달려가 쌀 몇 팩(1팩 당 5kg 정도)을 사온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4년이 가까이 호주에 살면서 울리(울워스의 별칭)가 8시부터 문을 연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지인은 아무것도 쟁여놓지 않은 내게 쌀 한 팩을 팔았다. 호주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서른 명을 넘어섰다.
[3월 17일] 마트 진열대가 텅 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