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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글로 옮기기가...' n번방 사건이 던져준 충격과 처참함

[게릴라칼럼] 운영자와 가담자 모두에게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등록 2020.03.23 21:10수정 2020.03.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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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20대 남성 A씨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A씨가 텔레그램에서 유료로 운영한 이른바 '박사방'이라는 음란 채널에는 미성년자 등 여러 여성을 상대로 한 성 착취 영상과 사진이 다수 올려졌다. ⓒ 연합뉴스

 
"이게 일종의 신종 성범죄이기 때문에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처참한 지경에 이를 줄은 상상하기 어려웠죠."

'프로파일러'로 유명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조차 참담함을 토로했다. 2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다. 최근 주범 중 한 명인 20대 조아무개씨('박사')가 구속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이른바 '텔레그램 n(엔)번방 사건'의 참상은 실로 처참했다. 이 교수가 "방송용인지 저도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시민들이 알아야 법이든 제도든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든 피해 사례도 목불인견 수준이 아닐 수 없었다.

"제가 굳이 말씀을 드리자면 **에 이물질을 삽입시키는 건 기본적으로 하는 거고요. 자해 동영상이라고  칼로 몸을 스스로 긋게 한다거나 심지어 피해 여성들을 노예라고 불렀답니다. 노예라고 새기게 만드는 영상까지 있다는 거예요(중략).

바깥에서는 도저히 보일 수 없는 은밀한 부위에다가 그런 행위를 시키고는 인증 영상. 예컨대 박사가 만든 동영상이다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행위를 동영상 안에 포함되도록. 그래서 이거는 박사의 지시에 따라서 만들어진 동영상이다라는 것을 유저들은 다 알 수 있게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피해자에 대해서 인격체라는 생각은 애당초에 안 했던 것 같고요."


지난해 9월 경찰 수사가 시작된 후 그해 11월 <한겨레> 보도로 수면 위로 떠오른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실상은 '차마 글로 옮기기가 힘들다'는 기자들의 토로가 이어질 만큼 참혹했다.

23일 오후 2시 현재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226만 명),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156만 명), <가해자 n번방 박사, n번방 회원 모두 처벌해주세요>(36만 명), <N번방 대화 참여자들도 명단을 공개하고 처벌해주십시오>(31만 명) 등 가해자들과 가담자들의 강력한 처벌과 신상공개를 원하는 청와대 청원에 도합 450만 명이 청원에 동의한 상태다.

그만큼 이 상상조차 힘든 이 신종 성범죄와 가해자, 가담자들을 향한 국민적 공분이 크다는 반증일 터. 더 참혹한 사실은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 명이 동시 접속했다는 이들 텔레그램 대화방의 가담자 수가 26만여 명(중복 포함)에 달한다는 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의 조사 결과였다.


소셜 미디어 상에서는 그 엄청난 숫자로 인해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이들의 고백이 줄을 잇고 있다. 비단 피해자들이나 26만이란 가해자들만의 문제일 수 없었다. 한국사회 전체가 문제 해결을 위해 즉각 움직여야 할 비극적인 중대 사건이다.

공분과 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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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에서 보도한 n번방의 실태 ⓒ JTBC 캡처

 
"너무 화가 났고요. 저도 부모 입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요. 범죄 양상 자체가 많이 보도되고 했지만 일반적인 성범죄하고는 또 차원이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어린이를 포함한 피해자들을 노예화시키는.

우리가 그렇게 소리 높여 규탄, 비난한 일제의 성노예화, 2차 대전 당시의. 그것에 비견할 정도가 아닐까 싶고요. 더더군다나 온라인 디지털 모바일 사회에서 피해자들의 신상이 마구 유포, 공개되고 있다는 건 그 피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기 때문에 너무 좀 충격적입니다."


같은 방송에 출연한 프로파일러 출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진단이다. 그만큼 사안을 중대하고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설명이라 할 수 있었다. 경찰 발표와 JTBC <스포트라이트>, <국민일보> 'N번방 추적기' <텔레그램에 강간노예들이 있다> 등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사건의 진상은 글로라도 마주하기가 꺼려질 만큼 확실히 충격적이었다.

'박사' 이전에 '갓갓'이 있었다. 지금도 트위터 상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살색계', '일탈계' 등 자신의 특정 신체부위를 노출하는 10대, 20대 초중반 여성 트위터 사용자들이 가해자들의 주요 표적이었다. 지난해 초부터 활동한 아이디 '갓갓'은 경찰을 사칭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속이고 신상정보를 얻어냈고, 이후 신상공개 등 피해자들을 협박, 미성년자가 포함된 가해자들에게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든 요구를 이어갔다.

그 수위는 소위 '스너프 필름'이라 불리는 가학/피가학 영상을 넘어서는 정도였고, 이수정 교수가 "피해자를 인격체라 아예 생각 안 했던 것 같다"고 할 만큼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정도였다. 이어 지난해 7월부터 활동한 것이 '박사'로 불린 조씨였다.

조씨는 소셜 미디어 등에 아르바이트 공고를 내거나 수많은 채팅 앱 상에서 여성들을 유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거나 경찰을 사칭한 가해자들의 꼬임에 넘어간 여성들은 얼굴 사진과 신분증 등 신상정보를 넘겼다. 조씨와 공범들에게 지속적으로 협박을 받은 결과, 자신의 은밀한 사진이나 영상을 조씨에게 건넨 10대와 20대 초중반 여성 피해자가 총 74명이나 됐다. 그 중 미성년자도 16명이었다.

경찰 수사에 따라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큰 상태. 이런 텔레그램 대화방의 입장료가 많게는 150만원, 유료회원은 3만 명이나 됐다. 과거 텔레그램방을 운영했다는 한 남성은 20일 MBC <뉴스데스크>와 한 인터뷰에서 "큰 방은 최대 2만 2천개에서 자료가 10만개에 도달한다"며 "2만 명의 혹은 3만 명의 일반인들이 정상인인 척 살아가면서 텔레그램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모여든 가담자들의 숫자가 26만이라고 한다. 거짓말을 못하는 숫자가 가리키는 진실이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이렇게 수집한 영상을 통해 수익을 거둔 조씨가 집에 쌓아둔 현금은 1억 3천만 원. 경찰은 조씨와 공범으로 검거된 13명 중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며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을 조씨에게 넘긴 남성 등 4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가담자들은 물론 유료 회원 3만 명도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겠느냐는 데 대한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분분하다는 것. 더 큰 문제는 저들 3만여 명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과는 별개로 이 사건의 파장이 여성들이 느끼는 공분과 고통을 포함해 한국사회 전체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길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데 있다.

n번방 사건이 특히 충격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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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가해자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청원. 해당 청원에 동의하는 국민은 23일 오전 10시 30분 220만 명을 넘어섰다. ⓒ 청와대 청원게시판

 
이 사건의 특이점이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인 이유는 여럿이다. 먼저 극단으로 진화된 여성혐오와 디지털 성범죄의 현재. '버닝썬 사건'과 그로 인해 불거진 '정준영 단톡방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이다. 하지만 시기만 놓고 보면 온 국민이 두 사건에 공분하고 있을 때, 가해자들과 가담자들은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유유히 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지켜보며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각종 단체 채팅방에서의 성폭력 사건은 또 어떠한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강남역 살인사건 등 '여성혐오' 사건들이 즐비하고, 구속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지배한 디지털 성범죄와 웹하드 카르텔 역시 공고하다.

'소라넷' 폐쇄 이후 경찰이나 정부가 근절 의지를 표명한 일련의 범죄들은 텔레그램 n번방과 같이 음지로 숨어들었을 뿐 그 잔학성이나 대중성은 날로 도를 더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공고한 남성 카르텔과 소위 한국 남성들의 여성혐오 문화, 이를 디지털 성범죄로 소비하고 산업화하는 구조가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는 셈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여기에 잔학성과 가학성을 극대화시킨 형태였을 뿐이고.

두 번째 가담자의 광범위한 숫자와 낮아지는 연령대.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해 가을 자취를 감췄던 '갓갓'이 고등학생일 것이란 추측이 난무했다고 한다. 본인이 수능을 보기 위해 N번방을 잠시 떠난다고 밝혔다는 것. 박사 역시 올해 26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사성에 따르면, 가담자들의 나이도 10대와 20대가 60~7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가해자도, 가담자들 역시도 10대와 20대가 주축을 이룰 것이란 추정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앞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여성혐오 문화와 디지털 성범죄를 내면화하고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청년 남성들이 만연하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그런 문화를 산업화한 어른들이 이들을 키운 것이나 마찬가지고.

"고작 회식 하나도 '자발적으로' 못 빠지는 어른들이 협박 당해서 동영상을 찍은 중학생더러 자발적으로 찍었으니 지 탓이라고 한다."

22일 수 천회 리트윗된 어느 트위터 사용자의 일침이다.

이번에야말로 남성 성범죄자들에 대한 단죄와 일벌백계를 통해 여성혐오(강간문화) 문화를 공유하고 디지털 성범죄에 기생하는 남성들과 이를 묵인하거나 근절해오지 못한 한국사회 지도층이, 권력기관이 처절하게 각성할 때가 아닐런지. 이를 묵인하거나 외면해온 남성들의 공범의식과 죄책감이 발동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리고, 정치권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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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박주민 최고위원, 진선미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아동성착취물이 포함된 불법촬영물 제작, 유포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텔레그램 N번방의 범죄를 규탄하며 재발금지법 통과와 해당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지금 성폭력처벌법이 아마도 지금 가장 중한 법으로 보이는데요. 상습, 가중 이런 것까지를 포함을 한다고 해도 과연 10년을 넘길 수 있을지, 사실 피해자가 수십 명인데. 범죄수익이 수억 단위인데 지금 그런 부분이 양형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을지. 사실은 죄명이 없다 보니까 굉장히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거죠." (이수정 교수, 20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인터뷰 중에서)

이 교수는 n번방 주모자들에 대해 "엄중 처벌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의 경우, n번방 일반 가담자들의 상당수가 "기껏해야 일반음란물 소지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설명이었다. 9일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지원단체인 '프로젝트 리셋'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 법 개정"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통과된 수정안이 이른바 딥페이크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데 그쳤다는 게 이유다. 이들은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수사기관 내 디지털성범죄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자 '양형기준 재조정'을  요구해 왔다.

이와 관련, 지난 3일 법안 처리와 관련해 국회 법사위 제1소위원회에 참석한 여야의원들과 김오수 법무부 차관,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의 발언들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23일 심상정 대표는 언론에 보도됐던 이들의 발언 일부를 페이스북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들이 딥페이크와 관련해 나눈 대화는 이랬다.

"자기 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갈(처벌할) 것이냐."(정점식 미래통합당 의원)
"자기는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 있다."(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
"청소년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한다."(김오수 법무부 차관)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냐."(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
"굳이 새로운 구성요건을 만들 필요가 있나.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듭니까." (통합당 김도읍 의원)


이들 모두 남성들이라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공고한 남성 카르텔이든, 날로 발전하는 디지털 범죄를 쫓아가지 못하는 양형기준이나 처벌 조항이든, n번방 사건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자 지난해 '버닝썬 사건' 등의 철저 수사를 지시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나섰다.

"이번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행위는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였으며,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순식간에 300만 명 이상이 서명한 것은 이런 악성 디지털 성범죄를 끊어내라는 국민들 특히, 여성들의 절규로 무겁게 받아들인다."

23일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이 전한 문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n번방 회원 전원 조사"를 비롯해 '가해자 엄벌'과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엄중한 수사', 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외 특별조사팀 구축도 지시했다. 

주말 내내 이어진 여성들의 절규와 공분에 청와대와 정치권이 빠르게 화답하는 모양새였다. 물론 이조차도 버닝썬 사건과 정준영 단톡방 사건, 장자연 사건 등에 대한 해결 목소리가 드높았던 지난해와 엇비슷한 양상일 수 있다.

결국 남성 중심의 한국사회가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칠 일말의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그저 시늉만 한 것은 아닌지 곱씹고 되돌아 볼일이다. 'n번방 사건'은 이번마저 기회를 놓친다면 영영 한국사회의 '모럴'이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처하는 건 아닌지 회의감을 주기에 충분한 충격적이고도 비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N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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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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