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이 항상 몰리는 헬싱키 대성당 주변은 코로나19 사태로 인적이 끊겼다.
권보미
상징적인 것은 수도 헬싱키의 봉쇄입니다. 헬싱키는 유엔이 올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 헬싱키를 포함한 수도권에서 확진자의 70%가 나오자 167만명이 사는 수도권(우시마 자치구)을 3월 28일부터 봉쇄해버린 것입니다. 수도권의 사람들은 지방의 소도시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로나19를 피해 이들이 소도시 별장으로 이동할 경우 의료시설이나 장비가 부족한 지방 소도시들에 큰 타격이 되기 때문에 봉쇄조치가 이루진 것입니다.
핀란드 사람들은 현재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규정을 비교적 잘 따르고 있습니다. 슈퍼마켓도 예전엔 주 3, 4회 갔다면 주 1회만 가고, 계산대에서도 1미터 이상의 거리두기를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헬싱키는 마치 여름 휴가철의 텅빈 도시를 연상케 합니다. 이케아에 근무하는 한 지인에 따르면, 자택근무로 인해 작업용 의자나 책상의 구매가 평소보다 늘었다고 전합니다. 가족들이 하루종일 많은 시간을 제한된 곳에서 보내다 보니, 이후 이혼율이 늘지 출산율이 늘지 지켜볼 일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한국에 코로나 검사 의뢰, 알고 보니 사설 병원
핀란드인들은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호흡기 증상이 생기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병원으로 바로 가지 않고 정부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해서 의료기관의 지시를 따릅니다. 핀란드는 공공의료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수술을 포함한 대부분 치료비가 거의 무료에 가깝습니다. 일부 부담해야 하는 돈도 없으면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형편을 확인한 후 전액 면제해 줍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공공병원에서 무릎수술, 허리수술을 받으려면 그 환자가 아주 위태롭지 않으면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 대기해야 하는 불편함이 싫은 경우에는 사설병원을 이용합니다. 물론 사설병원은 매우 비쌉니다. 위 내시경의 경우 공공병원은 무료인데 사설병원은 1백만 원 정도를 내야 합니다. 의료수준의 질적인 차이보다는 신속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사설병원을 이용하는 편입니다.
공공병원과 사설병원은 서로 협업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공공병원의 의사가 이 환자는 매우 시급하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치료가 사설병원에서 이뤄지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면, 그 환자를 사설병원으로 보냅니다. 이 경우 치료비는 공공병원과 같습니다. 즉, 국가가 그 치료비를 대주고 신속한 치료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의 코로나19 감염 검사를 할 때는, 그것이 치료가 아니라 감염 검사이기 때문에 공공병원에서 할지라도 국가지원이 없어서 195유로(한화 약 26만원)를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이마저도 병원에서 판단할 때 증상이 심한 사람부터 검사를 하니, 가벼운 증상이 있는 사람은 검사를 받고 싶어도 마음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19 감염검사를 빠르게 받고 싶은 사람들은 사설병원을 이용합니다. 사설병원은 코로나19 검사비가 1회에 249유로(한화 약 33만원) 정도입니다. 그 사설병원 중의 하나가 이번에 뉴스에 등장한 메힐라이넨 병원입니다.
메힐라이넨 병원은 주로 규모가 큰 기업들과 계약을 하고 그 종업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번에 메힐라이넨 병원과 10개의 대기업들이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신속하게 진단하기 위해 채취한 검체를 한국에 보냈습니다.
이에 대해 핀란드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혹시 이것을 핀란드의 의료체계가 붕괴된 사인으로 받아들이거나,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핀란드 정부의 무능으로 인식하는 건 아닐까요? 누군 빨리 검사받고 누군 늦게 받느냐면서 불평등하다고 불만을 갖진 않을까요?
담담한 핀란드인들 "정부 믿는다, 의료붕괴 아냐"
저는 최근 3일간 제가 알고 있는 10여 명의 핀란드인들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여전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핀란드 사람들은 그동안의 오랜 경험을 통해 환자의 상태가 아주 안 좋은 경우에 한해서 긴급하게 의료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것에 익숙합니다. 검사를 늘려야 한다는 요구들이 있었지만, 이것에 대한 불만이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둘째, 이번에 핀에어까지 동원해 한국에서 검체 진단을 한 메힐라이넨 병원은 의료 사기업이기 때문에 한 발 물러나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검체 해외 공수를 해가면서까지 검사를 늘리는 배경에 상업적인 의도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셋째, 이번 사례가 핀란드 '의료체계의 붕괴'로 해석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제대로 실천되고 있고, 그 덕분에 병원 시설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았고,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사망자가 아직 28명으로 큰 규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넷째,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매우 예외적인 상황임을 국민들이 함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단 장비나 검사역량의 부족으로 제한적인 검사를 해도 이를 정부의 대처능력 부족으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세계 2차대전 이후로 그 어느 나라도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진,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기본 가정으로 하여 사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핀란드 사람들은 정부의 대처능력 부족이나 행정력 부족을 탓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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