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아신스 알뿌리가 온전하게 보이도록 심는다. 꽃이 피기 전에 모습이 참 예쁘다. 이제 곧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김이진
알뿌리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가을 즈음 신문지에 둘둘 말린 알뿌리를 몇 개 받았다. 집에 와서는 알뿌리가 보이게 심으란 말만 기억나고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심으면 과연 뭐가 자라긴 하나 싶었다. 그냥 둘 순 없어 화분에 주섬주섬 흙을 담아 알뿌리를 심었다. 알뿌리에 독성이 있는지 맨손으로 조물락 만졌더니 피부가 붉어지면서 근질근질했다.
늦가을에 심어두고 거의 잊다시피 했다. 겨울 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너무 마르지 않을까 염려가 돼서 며칠에 한 번씩 물을 주었다. 동면을 하는 식물인가 싶을 정도로 고요하더니 오오, 초록색의 뾰족한 새순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한참을 정지 화면처럼 멈춰 있다가 까맣게 색이 변하며 죽어 버렸다.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 물렀던 모양이다. 그대로 자랐다면 그 다음해 4~6월쯤에 꽃을 피웠을 텐데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봄이 되면 꽃집에서 히아신스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걸. 본래 히아신스는 터키와 발칸반도 지역이 원산지인데 우리가 보는 히아신스는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생산한 것을 수입해 오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만난 알뿌리는 겨울을 나지 않은 것이고, 봄 시즌 꽃집에서 만나는 히아신스는 수입한 알뿌리를 겨우내 싹 틔우고 개화 준비를 끝낸 상품이다.
히아신스는 알뿌리에서 튤립처럼 생긴 매끈한 잎이 돋아나고, 중앙 부분에 꽃대가 올라온다. 나는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전, 잎 사이에서 야무지게 앙다물고 있는 꽃봉오리 상태가 참 좋다. 단단한 뿌리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겨울 동안 땅 속에서 추위를 견디며 조금씩 영양을 모으고, 기다리고, 봄을 맞이하는 모습은 뭔가 대단하다.
꽃봉오리가 조금씩 벌어지고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성질이 어찌나 급한지. 꽃 피우는 게 절정에 이르면 밤 사이에도 으라차차 기지개 켜듯 꽃을 부지런히 피워낸다. 참고로 온라인 배송으로 히아신스를 주문했다가 꽃이 다 핀 히아신스를 받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나는 시간의 흐름을 한 번에 보여주는 것처럼 급격하게 변화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구세요?" 묻고 싶어질 정도로 쑤욱 자란 꽃을 볼 수 있다. 별처럼 생긴 작은 꽃잎들이 촘촘하게 모여 하나의 꽃덩이가 된다. 나는 그냥 꽃방망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