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현황
넥스트스트레인
1987년, 지구에 사는 현대 인류에게 공통된 할머니가 있고 그 할머니는 아프리카에서 살았다는 연구가 <네이처>에 발표되고 나서, 세계는 연이은 기사로 떠들썩했다. 이른바 '아프리카의 이브'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1만 세대쯤 전에 살았던 나의 할머니가 아프리카에서 살았다는 것과 그 할머니가 다른 모두의 할머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것은 모든 생명체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왔으며, 이전의 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공통된 조상이 있다는 진화 원리를 배경으로 한다. 나와 내 동생에게는 우리 엄마라는 공통 조상이 있고, 엄마와 이모에게는 할머니가, 할머니와 이모할머니에게는 증조할머니가 있고, 하는 식으로 따라 올라가는 것인데, 그렇게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의 할머니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나와 6촌 언니가 같은 증조할머니로 이어져 있는 구조를 전 지구로 확대해 놓은 것과 같다.
인류 발생 이후 꾸준히 족보가 이어져 왔다면 그 할머니를 찾아내는 일이 쉽겠지만, 글로 기록된 인류의 역사는 기껏해야 수천 년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물학적 이해가 깊어지면서, 기록으로 남지 않은 인류의 계통학적 역사가 우리의 디옥시리보핵산(DNA)에 장부처럼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된 것이다.
모든 인간의 세포에 미토콘드리아라는 DNA 조각이 존재하고, 이것이 엄마로부터 자녀들에게로 전달된다는 것과 DNA는 일정한 비율로 돌연변이를 얻으면서 전달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와 동생에게 공통으로 존재하는 돌연변이는 엄마로부터 온 것이고, 엄마와 이모에게 공통으로 존재하는 돌연변이는 할머니에게서 온 것이고 하는 식으로 미토콘드리아 비교를 통해 인류 모두에게 공통된 할머니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바이러스는 DNA나 리보핵산(RNA) 조각이 단백질 옷을 입고 있는 단순한 구조로, 생물체 내로 침입해 들어가게 되면 그 생물의 생체 공장을 가동시켜 자신들의 자손들을 복제해낸다. 복제된 자손들이 다시 단백질 옷을 만들어 입고 밖으로 나와 다른 생물로 옮아가는 식으로 세대가 이어지는데, DNA 바이러스나 RNA 바이러스나 그 유전체가 일정한 비율로 돌연변이를 얻으면서 세대에서 세대로 복제된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과 비슷하다.
말하자면, 새로 복제된 바이러스에는 엄마 바이러스가 있고 할머니 바이러스도 있다. 그러니까 그들이 얻었던 돌연변이는 그대로 복제되어 지금 막 생겨난 자손 바이러스에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모든 바이러스의 게놈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를 찾아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바이러스의 가계도를 그릴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계통도
지금 전 지구적 공포가 된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바이러스는 발생 이후 지금까지 세대에서 세대로 복제해가며 전 세계로 퍼졌는데, 우리가 그 모든 바이러스의 게놈을 안다면 그들의 가계도를 거의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들의 가계도를 알게 되면 그들의 공통 할머니가 언제쯤 살다 갔는지 알 수 있고 그들의 확산 동선과 속도 등을 추적할 수가 있다. 이것은 이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생물학적 정보로서뿐만 아니라, 방역에도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된다.
4월 10일 기준 세계 60개국에 걸쳐 염기서열화된 3640개의 코로나19 바이러스 게놈을 이용해 그 계통도를 그려 보여주는 곳이 있다. 넥스트스트레인(
https://nextstrain.org )이라는 개방형 온라인 바이러스 연구 커뮤니티다. 세계 바이러스유전학 전문가들이 바이러스 게놈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모으고 분석해서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비영리 단체이다.
넥스트스트레인은 이번 코로나19 국면에서 국제인플루엔자데이터공유이니셔티브(GISAID, 바이러스 정보공유망)에 공유된 코로나19 바이러스 게놈의 계통도를 그려 업데이트하고 유전학적 분석 및 실시간 데이터 시각화 등을 제공하여 바이러스 학자들과 역학자들 모두에게 유용한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진화생물학적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