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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망해도 20대 중반, 무엇이든 도전해 볼 만하다"

[인터뷰] 지역농산물로 샐러드 판매, 청년창업자 박태하, 이채원씨

등록 2020.04.22 13:45수정 2020.04.2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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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채색되지 않은 하얀 도화지 같은 청년들이다. 충남 홍성에 살고 있는 박태하(25) 이채원(24)씨의 이야기이다. 박태하씨는 군대를 제대하고 청운대교 호텔조리식당경영과에 복학한 학생이고, 이채원씨는 올해 청운대를 졸업했다.

두 청년은 유기농 특구인 홍성에서 생산된 유기 농산물로 샐러드를 만들어 팔고 있다. 아침밥을 자주 거르는 대학생들이 주요 고객이다. 청년들에게 '아침밥 먹는 문화'를 만들어 주자는 취지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코로나19로 학생들의 개강이 늦어지면서 고객이 줄었다. 두 청년 또한 코로나19 발 경제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두 청년은 지난 4월 17일 홍성YMCA와 함께 홍성의료원에 300인 분의 샐러드를 만들어 기부했다. 두 청년의 '샐러드 기부'는 미담이 되어 지역 사회로 조용하게 흘러 퍼지고 있다. 두 청년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도화지 같은 두 청년, 유기농산물에 눈뜨다
 

유기 농산물에 눈을 뜬 두 청년은 홍성에서 생산된 유기농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고 있다. 왼쪽 박태하, 오른쪽 이채원 ⓒ 이재환

  
청년들은 "코로나19 때문에 힘들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유기농산물과 농부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주문이 줄면서 오히려 유기 농가를 방문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많아 졌다고 했다. 그 사이 유기농산물과 농부들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도 생겼다. 유통과정이 짧은 지역 농산물은 신선도가 높을 밖에 없다.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채소는 두 청년들이 유기농 샐러드를 만들게 된 배경이 됐다.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이 두려울 법도 하지만 이채원씨는 긍정적이다. 채원씨는 "조심스러운 말이기는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것이 무기라면 무기이다. 지금 당장 망해도 이십대 중반"이라며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다. 그래서 도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두 청년들이 만든 기업 이름은 '와우네'이다. 직접 요리를 하는 박대하씨가 대표를 맡았다. 기획을 좋아하는 이채원씨가 기획팀장으로 일한다. 지난 21일 청운대학교 인근에 있는 와우네를 찾아 두 청년과 이야기를 나눠 봤다. 두 청년과의 이야기의 키워드는 유기농산물에 대한 새로운 이해, 지역 농민들과의 공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태하씨는 말 보다는 손이 빠르다. 반면 채원씨는 언변이 뛰어난 편이다. 이날 인터뷰도 이채원씨가 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

끼니 거르면 늦은 저녁 야식으로 이어져, 건강한 식문화에 관심


- 청년 기업인데, 둘이서 의기투합해 창업을 하게 된 동기가 있나.
이채원: 서로 뜻이 맞았기 때문에 창업을 했다. 대표인 박태하씨는 요식업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전공이 공연기획경영학과이다. 문화기획에 관심이 많았다. 아침밥 배송으로 처음 창업을 했다. 아침밥 배송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들은 아침밥을 거르는 경우가 많다. 끼니를 자주 거르다 보면 늦은 저녁 '야식'으로 이어지곤 한다. 식습관 자체가 건강하지 않은 것이다. 학생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대학생들의 아침밥을 챙겨주자는 의미로 일을 시작했다.

박태하: 친구들을 만나면 주로 술을 먹거나 게임을 한다. 그다지 생산적이지도 않았고 흥미가 없었다. 물론 놀 때는 재미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일 뿐이다. 그래서 좀 더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을 찾게 되었고 결국 창업까지 하게 되었다. 가게를 직접 운영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이다.


- 창업과정도 궁금한데 어떻게 창업까지 한 것인지 좀 더 설명해 달라.
박태하: 창업하기 전에 정부지원 사업을 통해 2년 정도 경험을 쌓았다. 정부 지원 사업이 종료되고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인 자립 생활이 시작됐다. 정부 지원 사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과 부모님의 지원도 조금 받았다.

- 시골의 작은 중소 도시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결정하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다.
박태하: 청운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보니 학교가 있는 홍성에서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2018년 정부 지원사업을 할 때는 충남 지역 해산물을 이용해서 간장 절임류인 새우장이나 게장 등을 만들어 팔았다. 하지만 시설과 보관에 문제가 생겼다. 새롭게 창업을 하면서 아침밥 배송을 시작했다.

이채원: 지금은 샐러드 전문으로 아침밥 배송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덮밥이나 샌드위치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었다. 1월부터는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 했다. 홍성을 주제로 삼고 싶었지만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홍동(홍성군의 한 면소재지)에 들렀다. 그곳에서 유기농산물을 접하게 되었다. 지역 농가도 그때 처음 찾아갔다. 홍성이 유기농업 특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전에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홍동을 돌아다니며 유기농산물의 장점을 알게 되었다. 홍동에서 나온 유기농산물로 샐러드를 만들면 지역에도 기여할 수 있고, 대표적인 먹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만든 샐러드를 먹어 보기 위해 홍성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골에서 하는 사업, 인터넷 검색 보다 '발품'이 중요해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역사회와의 공존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박태하: 솔직히 돈만 벌고 싶었다면 다른 일을 했을 것 같다. 뭔가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실제로 국밥이나 다른 음식을 만들어 팔면 회전율도 빠르고 더 많이 팔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 사회에 조금이라도 공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권이나 서울은 핸드폰으로 정보를 검색하면 다 나온다. 네트워킹이 잘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시골은 주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직접 농가를 돌아다니지 않으면 식재료와 관련된 좋은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이채원: 시골에서는 발품을 파는 게 중요하다. 필요한 물건을 찾아 농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른 농가를 소개해 주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알음알음 정보를 넓혀가고 있다. 현장에 나가 사람을 만나고 그곳에서 답을 찾고 있다고 보면 된다. 홍동과 같은 시골은 사람이 정보고 연결망이란 생각이 든다.

- 지역에서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식재료로 이용한 것도 의미가 커 보인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이채원: 딱히 누구의 아이디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둘이서 한 마음으로 의견을 냈다. 홍동의 농가를 돌아다닐 때도 둘이 함께 돌아 다녔고, 사람들도 같이 만났다. 그런 과정에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의견 일치가 된 것 같다. 
   

와우네와 홍성YMCA는 지난 17일 홍성의료원에 유기농 샐러드 300개를 기부했다. ⓒ 이재환

    
- 홍성의료원에 샐러드를 기부 했는데.
이채원: 어머니와 언니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전국의 의료진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의료진들이 인스턴트 음식과 라면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그러다가 홍성 YMCA의 도움을 받아 샐러드를 기부할 수 있었다.

유통 거리가 짧은 지역 유기농산물 경쟁력 있다
 

- 창업한지 얼마 안 되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이채원: 이전에는 판매를 SNS(누리소통망)를 통해서만 우리가 만든 음식을 팔았다. 주 고객이 대학생들인데 개강 늦어진 데다, (온라인 강의로) 학생들이 등교를 하지 않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고객층을 좀 더 넓혀 홍성 군민 전체로 정했다. 전에는 SNS로만 홍보했는데, SNS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을 위해 전단지도 제작하려고 주문해 놓은 상태이다.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지만 전단지는 요식업의 기본이기도 하니까 한번 시도해 보는 것이다.

-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이채원: 농부들이 가꾼 유기농산물을 이용해 홍성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 물론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홍성에 오래 머물러야 할 것 같다. 채소를 농가에서 직접 농산물을 수급해 오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처음 유기농 채소를 먹어 보고 '왜 이렇게 맛있지'라고 생각했다. 정작 농부들은 '기분 탓'일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유기농 샐러드 채소에서는 단맛이나 아삭함이 더 잘 느껴진다. 유통과정이 짧다는 이점 때문에 신선도가 잘 유지되는 된다. 요즘은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멋지게 느껴진다. 전에는 농부를 생각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홍성에는 농업 전문성 뿐 아니라 철학이 남다른 분들이 많다. 나름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농부들이 존경스럽다.
#와우네 #청년 창업 #박태하 이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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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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