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뤼미오와 하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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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하스킬은 마지막 연주 열정을 불태운다. 하스킬은 26살 연하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팀을 이뤄 연주하는데, 둘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선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1947년, 52세가 돼서야 처음 녹음이 이뤄졌다. 그 첫 번째 곡은 런던 필과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다.
1956~1958년, 하스킬과 그뤼미오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과 모차르트 소나타 중 몇 곡을 녹음했다. 이때 녹음한 음반 중 모차르트 소나타는 세계 여러 음반 중 가장 뛰어난 음반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연주에 엄격했던 하스킬은 "지금 모차르트 KV. 271과 KV. 466을 들었는데 모두 너무 실망스럽다. 아마 내 평생 진정 만족할 만한 음반은 하나도 못 만들고 죽을지 몰라"라고 평했다. 자신에 대해 그토록 혹독한 평가를 했던 그이지만, 모차르트 소나타 KV. 304와 슈만의 아베크 변주곡, 숲의 풍경은 스스로 괜찮은 음반으로 평가했다.
그도 괜찮다고 평가한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V. 304는 모차르트가 22살에 어머니를 보내고 슬픔에 잠겨서 쓴 단조곡이다. 모차르트의 슬픔이 하스킬의 손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내는 선율이 듣는 이의 마음을 통째로 흔들어버린다. 굉장히 시리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나는 이 곡이 마치 모차르트가 그를 위해 남겨 놓은 곡이란 생각이 든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주고받는 대화가 모차르트가 하스킬에게 위로를 건네는 느낌이랄까.
오케스트라(모차르트)는 피아노(하스킬)에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라고 독려하고, 피아노는 서러운 마음을 쏟아내고, 다시 오케스트라가 그를 위로한다. 하스킬이 음악으로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이 느껴지는 곡이며, 그가 왜 '모차르트의 모차르트'인지를 알게 하는 연주다.
가혹했던 인생에도 "저는 행운아였습니다"
하스킬은 공연하러 온 브뤼셀역에서 현기증으로 실족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병원으로 급하게 옮겨지고 정신이 돌아온 그는 동생에게 "그뤼미오 씨에게 내가 함께 연주회를 계속하지 못해 얼마나 미안해하는지 전해주거라"라는 말과 함께 "그래도 손은 다치지 않았잖니!"를 유언으로 남기고 눈을 감았다. 1960년, 12월 7일이었다.
가혹하다는 말도 무색한 인생이었다. 그는 화려한 기교를 앞세우지 않고 내면 깊은 곳의 울림을 전하는 진솔한 연주자였다. 고통에 굴하지 않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서는 예술가의 영혼은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무한한 위로와 깊은 울림을 전한다.
평생 혼자 몸으로 고양이 한 마리와 온기를 나눴던 그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항상 벼랑 모서리에 서있었어요.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인해 한 번도 벼랑 속으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지요. 그래요, 그건 신의 도우심이었습니다." - 지식채널e 클라라 하스킬 편에서 인용
참고서적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노태헌, 살림.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박종호.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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