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0)
송주연
다양성은 불편한 것
이야기는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시작된다. 인종적 다양성은 있지만 계층적으로는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이 다녔던 가톨릭계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백인들이 주를 이루지만 계층적 다양성이 큰 중학교에 진학한다. 그리고 헝가리 출신 이민자이지만 부유한 다니엘과 가난한 영국 백인 노동계층의 아이인 팀과 단짝이 된다.
아이는 둘 모두와 친하지만, 팀과 다니엘은 서로의 상반된 배경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한다. 셋이 다 같이 잘 지내고 싶은 아이는 양쪽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마음을 열게 하려고 애를 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고민하던 아이는 엄마인 저자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다양성은 좋은 거 아니야?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는데."
"맞아"
"그럼 왜 다양성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거야?"
"원래 다양성이 있으면 매사 번거롭고, 싸움이나 충돌이 끊이지 않는 법이야. 다양성이 없으면 편하지."
"편하지도 않은데 왜 다양성이 좋다고 하는 거야?"
"편하려고만 하면, 무지한 사람이 되니까. 다양성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귀찮지만, 무지를 없애기 때문에 좋은 거라고 엄마는 생각해." (68~69쪽)
고개가 끄덕여졌다. 캐나다에서 경험했던 다양성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은 어떨지 생각하고 다른 문화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식이 쌓이고,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의 폭이 넓어지는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나의 문화적 정체감도 보다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책 속의 아이 역시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 보는(84쪽)' 공감을 실천하며 다양성 존중의 노력을 계속해 나간다.
'정의'라는 이름의 차별
그러던 중 마침내 사건이 발생한다. 팀의 가방이 찢어져서 노트가 쏟아지는 걸 본 다니엘이 팀을 '가난뱅이'라고 놀렸고, 그러자 팀이 '퍼킹 헝키(중유럽과 동유럽 사람들을 경멸하여 부르는 말)'라고 받아친 것이다.
이 말에 크게 화가 난 다니엘과 팀은 몸싸움을 벌이고 만다. 둘은 결국 학교에서 처벌을 받는다. 문제는 먼저 싸움을 시작한 건 다니엘이지만, 팀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더 큰 처벌을 받았다는 거였다. 아이는 이렇게 반문한다.
"인종차별이 불법이긴 해. 그런데 가난하거나 불우한 사람을 차별하는 건 합법이라니 이상하잖아. 정말로 그게 올바른 거야?" (77쪽)
책 속의 영국 사회도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에게도 '다양성 존중'이 '정의로운 일'이라는데 토를 다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정의를 지킨다는 이유로, 또 다른 편견과 차별에 익숙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책에는 이 외에도 배가 고파 급식실에서 샌드위치를 슬쩍한 아이를 '문제아'로 낙인찍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차별을 가하는 예도 나온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정의가 폭주한 것이다.' (56쪽)
정체감은 하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올바른 다양성 존중'이란 어떤 것일까? 저자는 질문을 던질 뿐 결코 이에 대한 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책 속 교장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약간의 힌트를 주는 듯 했다. 학교를 방문한 저자에게 아이 학교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잉글랜드인이자 영국인이고 유럽인입니다. 복수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요. 어느 하나를 고를 수는 없습니다. " (74쪽)
이 말에 저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분단이란, 여러 정체성 중 하나를 타인에게 덮어 씌운 다음 그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정체성을 골라 자신에게 둘렀을 때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75쪽)
바로 이거였다. 나는 이성애자이자, 여성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며 동시에 세계시민이다. 내가 나의 다양한 정체감을 무시한 채 이 중 하나의 정체감만을 골라 스스로를 규정한 뒤 이와 다른 정체감을 가진 이들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 차별과 분단 그리고 폭력은 아마도 이 지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스스로가 자신의 다양한 정체감을 인식하고, 타인 역시 다양한 정체감을 지니고 있으며, 결국엔 우리 모두가 '세계시민'이라는 같은 범주에 들어 있음을 인식할 때, 서로를 보다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너는 내 친구니까
책 속에서 저자는 가난한 팀에게 어떻게 하면 자존심 상하지 않게 재활용 교복을 선물할까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한다. 하지만, 저자의 아이는 너무도 쿨하게 팀에게 교복을 건네며 단지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내 친구니까". 아이의 말에 팀은 기쁘게 교복을 건네받는다.
어쩌면 어른들이 복잡하게 고민하는 다양성의 문제들이 아이들의 눈에는 이처럼 명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를 대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 이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캐나다에서 나의 아들 역시 그랬다. 나는 늘 복잡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초등학생 아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반 친구야" 이거 하나만 기억했을 뿐이다.
아이들은 때로는 스승같은 존재다. 때문에 아이들의 시선으로 다양성 문제를 다룬 이 책은 무척이나 길게 여운을 남긴다. 우리보다 다양성 측면에서 한참 앞선 영국의 이야기지만, 쉽고 재밌으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책 속의 에피소드들은 분명, 우리도 머지않아 고민하게 될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
브래디 미카코 (지은이), 김영현 (옮긴이),
다다서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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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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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른 게 당연하잖아" 아이 눈으로 본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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