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영동 대공분실의 일반적인 고문실 모습
박정우
내 세대는 이제 고인물... 앞으로는 후배들 지원할 것
- 책에 썼듯이 '이 책의 목적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전작의 제목이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이기도 하고. 박래군의 화두는 여전히 사람인가?
"인권이란 기본적으로 사람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인 만큼 사람을 떠나서는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본다. 다만 이 책을 준비하는 10년 동안 조금 변한 건 있다. 인권이란 인간은 모두 존엄하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개념인데, 가만히 보면 폭력을 저지르고 상상도 못 할 끔찍한 학살을 저지르는 것도 사람인 거다. 그들 대부분이 처음부터 나쁜 놈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어떤 경제적인 상황, 정치적인 상황들이 겹쳐지면서 잔인한 광기가 발생하는 인간으로 돌변하더라는 거지.
그렇다면 그 끔찍한 일들이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서 발생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는 작업을 하면서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조건을 제거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도 그렇다. 그런 피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바꾸거나, 제도적인 장치로 막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는 거다."
- 인권 기행의 두 번째 시리즈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설마 또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웃음)
"그건 아니고...(웃음) 사실 동학에서 시작해서 연도별로 쭉 갔으면 좋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이가 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동학 관련해서 현장을 여러 번 방문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공부를 좀 더 해야겠더라.
우리나라 인권 이론이 서양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동학을 인권이란 관점에서 보면 서양의 이론보다 훨씬 더 깊이가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동학을 설명하는 것과는 좀 다르게 동학농민운동을 중심으로 인권사를 풀어내고, 집강소를 통해서 자치 행정에 관해서도 써보고 싶었다. 이렇게 풀어내는 것이 지금은 무리라고 판단해 이번엔 부득이하게 빠지게 되었다.
그 외에도 천주교 순교지를 돌아보면서 우리나라의 종교적 자유와 연결해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고, 이 외에도 하고 싶은 곳은 많다. 실제로 답사했는데 빠진 곳도 더러 있다. 이런 곳들을 포함해 총 10곳 정도를 해서 2권을 쓰려고 한다. 언제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10년은 안 걸린다!(웃음) 출판사 대표와는 2권까지 낸 다음에 아시아를 하고, 남미까지 가자는 얘기를 했는데 책이 좀 팔려야 가능하려나.(웃음)"
- 올해 예순이 됐는데, 여전히 현장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전작인 <사람 곁에...> 에서도 밝혔지만 만 60세가 되면 현장 활동가로는 물러나고 후배들을 지원하고 싶다.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소설도 쓰고 싶고. 은퇴하겠다는 게 아니라 예전처럼 어떤 사건이 생기면 나서서 뛰어들고 이런 건 좀 안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 거지. 인권운동이나 사회운동 같은 것들이 다른 분야에 비해 제일 발 빠르게 변하고, 혁신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내 세대들은 너무 고인 물이 됐다.
그동안 우리 같은 86세대들이 너무 오랫동안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길을 열어준다는 차원에서 나부터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공공연히 밝혀왔는데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어디 예순밖에 안 됐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하지를 않나...(웃음)
사실 인권운동 쪽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일하는 실무자들이 별로 없는 실정이기도 하다. 보통 5년이 고비라고 본다. 5년쯤 지나면 활동가로서 현장도 알고, 실무도 어느 정도 하고, 피해자를 만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조금 알게 되는 시기인 만큼 계속하면서 커나가면 좋은데,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쉽지 않다.
일은 많은데, 월급은 최저임금을 겨우 받을까 말까 하는 정도니까 전망이 안 보인다고 판단하는 거지. 뿐만 아니라 후배들이 들어와서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혼자서 지지고 볶으면 금방 지친다. 그런 점에서 나 같은 화석은 이제 뒤로 물러나서 후배들의 현실적인 문제 같은 것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일선에서 물러나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응원하겠다.(웃음)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이 책을 보시는 분들이 실제 현장을 꼭 가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그 엄혹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경제 활동을 하고, 먹고살았다. 인권 감수성이란, 공감 능력이란,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한국현대사 인권기행
박래군 (지은이),
클, 2020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8
'책'을 중심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전합니다.
공유하기
"쓰는 데 10년 걸린 이유? 겁나서"...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고민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