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는 소설' 표지'노동이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책이다. 노동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는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렸다.
조하나
<땀 흘리는 소설>은 '과연 노동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책이다. 우리나라에 젊은 세대가 함께 읽을 만한 제대로 된 노동 문학 선집이 없다는 안타까움을 담아, 문학을 지도하고 있는 현직 선생님들이 오랜 고민과 토론 끝에 엮어냈다.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하듯이, 비교적 최근 발표된 단편 소설 가운데 '노동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는 문제작 여덟 편을 싣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노동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까? 그 일은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을까? 그렇게 흘린 땀방울은 어떤 보상을 받아야 할까? 질문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소설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이 소설들이 피부 깊숙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의 한 면으로 이해되기를 깊이 소망합니다. ('땀 흘리는 소설' 머리말 중)
여덟 편의 단편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일다운 일'을 찾아 헤맨다. 이쯤되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다운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일다운 일'이란 일단 4대 보험이 적용되며, 부당 해고의 위험 없이 퇴직금과 연차와 월차, 육아 휴직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정규직이어야 함이 마땅하다.
또한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이 사회 통념상의 윤리에 어긋남 없이 떳떳하게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일을 하는 동안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받지 아니하며 인간의 존엄을 훼손 당하지 않아야 한다. 바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다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하는 일은 정말 '일다운 일'일까? 나부터 대답하자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내가 앞서 말한 '일다운 일'의 조건을 꽤 많이 어기고 있는 중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 흉기란 바로 말이지요. 사람들은 벼려 온 칼을 이때다 싶어 우리한테 푹푹 꽂아 넣어요. 장시간 통화로 뜨끈한 귀를 만지작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우리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지요. 난자당한 상처를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건 고사하고 쏟아진 피를 닦을 시간도 없이 바로 그다음 공격이 들어와요. 통화를 마치게 무섭게 다른 콜이 연결되는 거죠. (땀 흘리는 소설 수록작 중 '어디까지를 묻다' 154P)
'감정 노동'이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특히 그 최일선에 서 있다고 해도 무방한 콜센터 상담 직원들은 고객 응대 과정에서 수시로 폭언과 성희롱에 시달리기 일쑤다. 게다가 회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할 것'을 강요한다.
위 소설 속 주인공이 일하는 콜센터의 센터장은, 어느날 고객에게 걸려온 전화를 응대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리고만 주인공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쿡 누르며 말한다.
"너 오늘 짐 싸서 가라."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가장 울컥한 대목이기도 하다. 단지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그 이유 하나만으로 주인공의 존엄은 처참하게 훼손된다.
우리의 노동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분명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8년 제정된 '감정노동자 보호법'만 해도 그렇다. 고객 응대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법안이 제정된 지 이제 이 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물론 그 실효성을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일다운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응원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땀 흘리는 소설>을 추천하는 이유기도 하다.
<땀 흘리는 소설>은 현재 우리가 처한 노동 문제를 직시하며 '일할 맛 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게다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문학계에서 그 역량을 인정받아온 젊은 작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은 하나같이 섬세한 문장력과 탄탄한 서사로 무장해서 소설 읽기의 재미마저 놓치지 않고 있다.
출퇴근 길, 한 편 한 편 음미하듯 천천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러 가는 길인지, 혹은 어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지 담담히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땀 흘리는 소설 -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당신이 꼭 읽었으면 하는 소설
김혜진, 김세희, 김애란, 서유미, 구병모, 김재영, 윤고은, 장강명 (지은이), 김동현, 김선산, 김형태, 이혜연 (엮은이),
창비교육,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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