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1일 한겨레사회연구소 창립총회에 참석한 박용길 장로(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영숙 평화민주당 부총재, 한 사람 건너 예춘호 전 의원.
박용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삼웅 위원 : 김재규 씨가 반체제 인사인 정구영 선생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중앙정보부 등에 체크가 되었을 것인데 그 후 김재규 씨가 건설부장관을 하고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 사실과는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을까요?
참고인 예춘호 : 김재규 씨와는 준장 때부터 자주 접촉해서 알고 지내는 사람입니다. 3선개헌 이후 저는 제명이 되었지만 정구영 선생은 당에 남아 있으면서 개헌에 반대를 하니 당에서는 걸림돌이 되어 있을 때입니다. 당시 차지철 씨는 입신해서 국회 외무위원장을 역임한 바도 있고 세상에서는 차지철 씨를 왈가닥으로 알고 있으나 6대 국회 때 처음으로 유서(?)라는 것을 만들어서 열심히 공부를 합디다. 당시 청와대에서 김- 오히라 파동으로 인해 김준연을 잡아 넣으라는 지시가 있었으나 야당이긴 해도 같은 국회의원 입장에서 저희들이 반대를 했는데 차지철 씨가 20여 명의 국회의원을 지휘하는 등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서 저희들의 동정도 살피고 보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중략)
김삼웅 위원 : 김재규 씨가 반체제인사인 정구영 선생, 장준하 선생, 김영삼 총재를 도와주고 한편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충성을 하여 군단장, 보안사령관, 건설부장관, 중앙정보부장 등을 한 것으로 보아 혹시 두 얼굴의 가진 사람은 아닌가요?
참고인 예춘호 : 그것은 여러분들이 판단을 하시되 사건을 분리해서 보시라는 겁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날밤 안가에서 난장판이 벌어진 것 아닙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상처를 했을 때 착한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다면 장가를 가라고 권유를 했을 것인데 이상한 아가씨들을 갖다 바치는 등 연회를 개최하였는데 주역이 중앙정보부였으며 그 부분은 좋게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분이 어떤 목적 하에 일관되게 행동한 것은 아니고 어떤 때는 공을 다투듯 충성을 다하고 어떤 때는 양심에 반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할 일 다 하고 좋은 자리 다하고 때로는 유하게 했지만 그래도 자기 생명을 걸고 죽일 정도면, 그 사람은 자기 생명을 던져도 되는 사람입니다. 그분의 행위를 의거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판단은 사회과학 입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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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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