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청소 두 번 하자는 말에 아내가 '뻥' 터졌다

처음 한 유리창 청소, 힘들었지만 재밌었던 이유

등록 2020.07.21 10:07수정 2020.07.2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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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청소해야 할 텐데." 아내의 그 소리 그동안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에는 건성으로 듣고 건성으로 흘려버렸다. 그런데 그게 내 앞에서 현실이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제 비 오는 일요일, 아내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베란다 유리창을 청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보고 옷 가볍게 입고 의자 두 개를 준비하라고 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다. 만약 아내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편안하게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아내의 비난은 한 귀로 흘려버린다 해도 마음은 종일 바늘방석일 것이 틀림없다.

5년 전까지 아내가 쭉 유리창 청소를 해왔는데, 그 뒤 몸이 아프면서 몇 년째 그것을 못 했다는 것이다. 가끔 거실에서 유리창을 보며 너무 더럽다며, 꼭 청소해야겠다고 말하곤 했다. 요즈음 들어 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데다가, 내가 곁에 있어서 실행에 옮기기로 한 모양이다.

의자를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밖은 시원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베란다에 보니 거품이 많이 나는 물이 대야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이상하게 생긴 도구가 놓여 있었다. 모양이 똑같은 게 두 개 있고, 스펀지가 그 물속에 있었다. 그리고 기다란 끈이 도구 한쪽에 달려 있었다.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의 용도는 금방 밝혀졌다. 아내는 스펀지를 주물럭주물럭하더니 그것을 그 도구에 하나씩 끼우는 것이었다. 아내는 먼저 베란다에 있는 호스로 유리창에 물을 쫙 뿌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유리창으로 가서 밖과 안쪽에 맞춰 댄 다음에 몇 번 손을 움직여 보았다. 놀랐다. 분명히 안에서 움직였는데 밖에 있는 것 같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강한 자석이 붙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아내는 알려주었다.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밖의 유리까지 안에서 편안하게 닦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 나서 나보고 의자에 올라가서 위에서부터 닦아나가라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베란다 유리창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뽀드득뽀드득' 하는 그 도구 소리가 참 좋았다. 마치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안에서 움직이는 대로 밖에서도 그대로 닦아지는 것이, 보면 볼수록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다. 아내 특유의 잔소리가 또 들렸다. 힘을 팍팍 주면서 닦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만 일이 발생했다. 오른쪽 끝까지 다 닦고 나서 방향을 틀 때 밖에 있는 도구가 순식간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러자 아내가 쥐고 있던 끈을 천천히 잡아당겨 그것을 손에 쥔 다음에 다시 안쪽 것과 딱 맞추는 것이었다.


이제 알았다. 그 끈이 무엇인가 처음에 무척 궁금했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달아놨다는 것을 알았다. 몸을 쓰지 않다가 베란다 유리창 닦기를 하니 힘들었다. 다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유리창을 확인하며 어디 어디가 덜 닦였으니 그 부분을 다시 하라고 말했다. 귀찮지만 어떻게 하랴. 죽을상을 하며 아내가 지적한 곳을 다시 닦아나갔다.

아내는 내가 닦고 난 다음에 호스로 유리창에 물을 뿌려댔다. 그 통에 나도 아내도 옷이 다 젖어버렸다. 아내는 유리창을 향했던 물 호스를 별안간 밖으로 빼더니 깔깔거리며 멀리 인도에까지 닿게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어떻게 그런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일을! 우리가 4층인데 그 물줄기는 아래 인도로 뿜어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빨리 인도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있는가, 없는가. 다행히 오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아내가 사람들이 있는 걸 보고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나도 아내처럼 그렇게 하고 싶었다. 물 호스를 빼앗아서 밖에다가 마구 물을 뿌려대고 싶었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그런 동심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그 속에 뛰어들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실행은 옮기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뤘지만, 그 순간은 그렇게 행동하는 아내가 매우 부러웠다.

베란다 유리창 왼쪽 길쭉한 부분도 닦았다. 닦은 다음에 또 아내는 물을 뿌려 비눗물을 씻어내었다. 아내의 옷은 완전히 다 젖었다. 바닥을 물로 깨끗하게 씻어내렸다. 나보고 거실에 준비한 손걸레를 갖고 와서 베란다에 있는 서랍장 두 개에 묻은 물기를 닦으라고 했다. 얼른 손걸레를 들고 정성을 다해 열심히 닦았다.

아내는 처음 청소를 시작할 때 말했다. 내가 말 잘 듣고 열심히 하면 30분이면 끝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시간을 넘을 거라고. 시간을 본 것은 아니지만 대강 40분가량 걸린 것 같다.

아내는 거실에서 베란다의 닦인 유리창을 보면서 마냥 흡족해했다. 몇 년 동안 마음을 짓눌렀던 체가 한꺼번에 빠지는 듯 홀가분해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랑 처음으로 청소를 함께해서 너무너무 좋았다고 했다.

베란다 유리창 청소, 나는 처음 이번에 해봤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해에 한 번 하는 거라지만 아내는 5년 전까지는 혼자서 그 일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말했다. 그때는 몸이 좋고 건강해서 할 수 있었노라고. 또 그것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했다.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비가 오는 날이라야 된다.

그동안 아들과 딸이 한두 번 도와준 일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유리창 닦는 걸 지금껏 몰랐을까. 비가 오고 나 없을 때 골라서 청소했던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여하튼 내가 그 어려운 일에 무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아내가 고생했다며 차 한 잔을 끓여줘 함께 마셨다. 나랑 유리창 청소한 것에 여전히 행복해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앞으로 유리창 청소 두 번 하도록 해요."

아내가 순간 '빵' 터졌다.
첨부파일 청소도구.jpg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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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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