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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고용보험 가입자와 비가입자는 노동조건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준다. 월평균 임금을 보면 비정규직 가입자의 경우 정규직의 64%에 달하는 반면 비정규직 비가입자는 정규직의 44%에 불과하다. 직장가입 기준 국민연금·건강보험 가입률은 가입자의 경우 정규직 가입률에 매우 근접한 수준인 반면 비가입자는 가입률 4.2%, 10.9%로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당 임금의 최저임금 미만자 비율은 가입자의 경우 16.6%인 반면 비가입자는 그 세배에 가까운 44.6%에 달한다. 이는 고용보험 비가입 비정규직의 경우 고용보험법뿐만 아니라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등 여타 노동관계법들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 고용보험 사각지대는 노동기본권 보호에서도 사각지대임을 의미한다.
고용보험 가입 비정규직의 경우 비가입자에 비해 최저임금법 위반 비율이 낮은 것은 상대적으로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은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동조합 효과는 비정규직 내 고용보험 가입률 편차에서도 확인된다. 비정규직 가운데 노조원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83.6%로서 미조직 비정규직 가입률 39.0%의 두 배가 넘는다.
비정규직 고용형태들 가운데 특수고용 비정규직이 고용보험 가입률 9.6%로 가장 낮은데, 노조원 특수고용의 경우 가입률 78.6%로 정규직 가입률에 육박하며 미조직 특수고용 가입률의 8배가 넘는다. 이는 비정규직을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은 노동관계법도 정부도 아니고 바로 노동조합이라는 생산 현장의 엄혹한 실상을 보여준다.
이처럼 노동조합의 노조원 비정규직 보호 효과는 유의미하지만 미조직 비정규직을 위한 노동조합의 낙수 효과는 없다는 점에서 미등록 비정규직의 고용보험제 편입은 노동조합 결성권 등 노동기본권 보호와 병행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미등록 비정규직: 대통령은 조속한 가입, 정부는 계획 없어
정부의 전국민 고용보험제 추진 관련 발표·논의는 주로 특수고용 비정규직 가운데 고용보험 편입 직종의 선별과 자영업자 소득 파악 및 징수 방안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의무가입 대상 미등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관심은 실종된 상태다.
의무가입 대상 비정규직의 절반이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현실은 현행 사업자 신고 의무제가 실패했고 노동자 자율신고제도 유명무실함을 의미한다. 고용보험 미등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년간 상담해온 비정규직 지원 노동단체 활동가들은 과거엔 노동자들이 보험료 부담 등의 이유로 고용보험 가입을 꺼린 사례가 많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실업급여 혜택을 받기 위해 고용보험 가입을 원하는데도 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40%에 달하는 의무가입 대상 미등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사업주의 고의적 고용보험 신고 기피.
사업주가 노동자의 가입 요구를 묵살하거나 가입 후 1회분 정도 납입하고는 중단한다. 또 고용보험료 부담분을 공제하면서도 신고하지 않고 횡령하기도 하고, 노동자에게 위법한 고용보험 비가입 계약서를 강요하기도 한다.
둘째, 사용자 확인 절차의 두려움.
노동자는 고용보험 가입을 원하고 근로자 자율신고제를 활용하고 싶지만, 근로복지공단의 사용자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해고나 계약 중단 혹은 갱신 거부 등 불이익 보복이 우려되어 자율신고를 하지 못한다.
셋째, 고용보험 가입의 실익 부족.
잦은 이직과 반복되는 실직 기간 누적으로 기준기간 내 피보험 단위 기간 등 수급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거나 저임금에 따른 낮은 임금일액과 구직급여일액으로 인해 실업급여 수급액수 등 고용보험제 혜택 수준이 미미할 것으로 추정하여 고용보험료 부담 대비 실익이 없다는 판단으로 가입을 기피한다.
넷째, 저임금으로 인한 고용보험료 부담.
고용보험료율 0.8%의 부담은 4.5% 보험료율의 국민연금과 연동되어 소급적용 되면 부담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보험 가입을 꺼리게 된다.
최우선 과제는 미등록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편입
문재인 대통령은 저임금 미등록 비정규직의 조속한 가입, 특수고용 비정규직의 빠른 편입, 자영업자에 대한 점진적 확대를 통해 전국민 고용보험제를 수립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단계적 접근 전략은 합리적인 선택으로 판단된다.
우선, 의무가입 대상 미등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편입은 현재의 고용보험법이 규정한 임금 노동자 의무가입 원칙을 실행하는 것으로서 가장 시급한 과제다. 미등록 비정규직을 포함한 의무가입 대상 비가입 임금 노동자들은 지금 당장 고용보험에 가입하여 보험료를 납입하도록 하고, 보험료 납입 즉시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등록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신고 기피에 대한 부정적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노동자 자율신고로 인한 불이익 보복 가능성을 차단하고 노동자 자율 신고제의 제약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 핵심은 노동자 자율 신고제에서 사용자 확인 절차를 피보험자의 근로자성·종속성 확인 방식으로 전환하고 캘리포니아 AB5의 ABC 테스트처럼 확대된 근로자성·종속성 개념에 기초하여 입증 책임을 노동자가 아니라 고용보험기구에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고용보험법 시행령의 개정과 함께 즉각 시행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정성과 저임금의 차별 처우를 받고 있지만 한국은 프랑스, 스페인과는 달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용불안정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고용보험료 감면 혜택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고용보험료 감면 부분은 정부가 재정 지원하되, 소요 재원은 비정규직 사용으로부터 편익을 취하는 사용업체들에 추가적 조세·부담금을 부과하여 충당할 수 있다. 사용자 부담 고용보험료를 현행 급여총액 기준 원천징수 방식에 더하여 초과이윤에 대한 추가적 고용보험료 부담금 부과를 통해 비정규직 고용보험료 감면 조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특수고용 비정규직과 자영업자의 단계적 편입
둘째, 특수고용 비정규직의 고용보험제 편입은 특수고용 비정규직도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한 유형이라는 점에서 정권의 의지만 있으면 고용보험법 등 일부 법규정 개정만으로 시행할 수 있다.
정부는 전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선언한 취지에 맞게 2021년 고용보험 편입 대상을 9개 직종의 특수고용 비정규직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전체 특수고용 비정규직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보험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을 통해 적용 대상 근로자의 개념 정의를 확대하여 사용종속성뿐만 아니라 경제적 종속성과 조직적 종속성 등 세 가지 유형의 종속성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해당되면 노동자로 인정하고 보호하도록 한다.
이렇게 다양한 고용형태의 비정규직들을 포함한 모든 임금 노동자들을 고용보험제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위장자영 노동자 등 특수고용 비정규직 상당수가 오분류되어 포함되어 있는 무고용 자영업자의 의무가입제도 함께 실시한다.
셋째,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적용은 사회적 합의와 고용보험제의 전면적 재편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
자영업자를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전국민 고용보험제를 수립·운영하기 위해서는 자영업자의 의무가입-임의가입 여부, 자영업자와 임금노동자의 고용보험료율 및 실업급여 수준의 차별화 여부, 자영업자 고용보험료 기여금의 정부 지원 수준 등의 쟁점들에 대해 공론화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고용보험제의 구조개혁을 실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 소득 파악과 적절한 보험료 징수방식을 수립하는 한편 자영업자 고용보험제의 효율적 작동과 긍정적 정책효과 산출을 담보하기 위한 자영업자 맞춤형 제도적 장치들을 설계하여 고용보험제 개혁 내용에 포함해야 한다.
전국민 고용보험 시대 선언의 진정성을 보여줘야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