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니와 펠릭스
문하연
펠릭스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파니가 작품을 출판하는 일은 여성의 의무에 짐만 되는 행위라서 자신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게다가 파니가 작곡가로서 경력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파니는 이미 250여 곡에 달하는 작품을 만들었거니와 살림보다는 작곡이 우선인 삶을 이미 살고 있었다. 다만, 파니는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 마치 벌거벗은 채로 세상에 서 있는 것처럼 두려웠다. 이런 심정은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여성 예술가들은 남성 예술가들 사이에서 늘 불안감을 배로 느낄 수밖에 없다. 롤모델도 없거니와 '여성의 소명'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작품에 대해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하는 사람은 모두 남성이다. 이렇게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느 누가 여성 예술가에게 극찬하겠는가? 이는 펠릭스도 마찬가지였다. 작곡은 남성 전유물이란 생각이 은연중에 각인되어 있었다.
이 와중에 파니의 출판을 격려한 사람은 그녀의 남편 빌헬름뿐이었다. 하지만 파니는 펠릭스의 동의가 없이는 출판하지 않을 마음이었다. 누구보다도 그의 의견이, 인정이 그녀에겐 중요했다. 펠릭스는 이미 유럽을 지배하는 음악가로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이 와중에도 파니는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창작에 대해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새로운 자극이나 지식의 습득 없이 무한하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법이다. 자기 복제에 가까운 작품들을 몇 개 쓰고 나면 작곡가든 작가든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1838년, 파니의 자신의 절망스러운 마음을 적어 펠릭스에게 보내는데, 여기에 그녀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사랑하는 펠릭스, 이 겨울에 단 한 곡도 작곡하지 못했단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전보다 연주는 더 많이 하고 있지만, 가곡을 작곡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아. 그런 느낌을 다시 알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가족과 함께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서 해결되었다. 이탈리아는 화창하고 온화한 날씨에 역사적 유물과 찬란한 예술품이 가득한 나라다. 파니는 이곳에서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의 작품을 보았으며, 작곡가인 베를리오즈, 구노 등을 만나 그들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연주도 했다. 모두 파니의 지성에 놀라고 연주에 넋을 잃었다. 이들이 보여준 반응은 파니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1841년,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파니는 <일 년, Das Jahr> 을 작곡한다. 이 곡은 1월부터 12월까지 각 달을 의미하는 12개의 곡으로 만들어졌으며 빌헬름의 삽화와 함께 짧은 시가 쓰였다. 여기에 쓰인 시는 독일의 낭만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울란트, 괴테, 아이헨도르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파니는 이 곡에 계절, 종교,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을 담았으며, 이 곡 안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시간은 그저 흘러버린 시간이 아니라 다시 순환되는 시간이다.
나이 마흔의 도전, 그 짜릿한 결과
1842년, 어머니 레아가 사망했다. 파니는 매주 일요일 콘서트를 열어 자신이 만든 실내악, 합창곡, 피아노곡들을 선보였다. 합창단도 꾸리고 작은 오케스트라도 만들어 펠릭스가 만든 곡뿐 아니라 다양한 곡들을 연습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를린 합창단도 파니의 음악 살롱을 높게 평가했다. 드디어 파니는 출판을 결심한다. 그리고 펠릭스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네가 그다지 기뻐하지 않을 거란 걸 아는데 일을 진행하려니 조금 어색하구나. 비웃고 싶으면 그렇게 하렴. 마치 내가 열네 살 때 아버지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나이 마흔에 남동생을 무서워하고 있구나. 여러 말 할 것 없이 나는 지금 출판을 준비 중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