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이 '버텨온' 8년

소설가 김연수가 그린 백석의 삶, '일곱 해의 마지막'

등록 2020.08.20 09:12수정 2020.08.20 14:59
0
원고료로 응원

소설가 김연수의 8년만의 신작, 일곱 해의 마지막 ⓒ 알라딘

무지의 소치인지, 게으름 탓인지, 무관심인지 갈피를 못 잡겠으나 한국소설을 잘 읽지 않아요. 0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것도 이런 탓이겠죠? 1개 국어라도 잘 쓰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한국소설을 읽었어요.

부끄럽지만 김연수 선생님이 쓴 책을 이제야 처음으로 읽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의 서문으로 김연수 선생님의 문장을 접한 것이 고작입니다. 8년 만에 나온 소설의 모티브가 백석이라는 사실에 끌렸어요. 나타샤를 그리던 백석을 김연수 선생님은 어떻게 그릴지 몹시 궁금했어요.


신작 <일곱 해의 마지막>은 절필 전까지의 백석이 '버텨왔던' 일곱 해의 삶을 담고 있어요.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 시인으로서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 욕망을 억압하고 조국의 열망을 앞세우는 주변 인물.

그 혼란 속에서 점점 깊어지는 고민과 나약함을 북한과 러시아라는 공간 속에서 보여줘요. 백석의 위대함보다 흔들리는 조국과 주위 환경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백석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줘요. 시인의 삶은 시적일 것 같지만, 결국 시인도 조국과 개인적 운명 앞에선 작은 소시민에 불과했어요.

김연수 선생님이 전작에서 말을 어떻게 다루셨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유독 생소한 우리말이 많았어요. 맥락상 의미를 파악하기는 수월했지만, 국어사전에서 틈틈이 검색해서 다시 한번 뜻을 새겼어요. 특히 '해정하다'는 말이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어떤 부분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사람 이름 같아서 친근했어요.

이 밖에도 등장인물이 눙치는 대사나 만담 속에서 말의 맛을 살리기 위한 동어반복과 운율도 돋보였어요. 이 모든 것이 민중의 언어를 시로 표현했던 백석을 그리기 위한 섬세한 연출 같았어요. '해정하다'의 뜻처럼 올곧게 백석을 그리는 것 같다고 할까요?

백석이 '살아온' 것이 아니라, '버텼다'고 해야 할 만큼 혼란과 고난의 연속이었던 일곱 해는 어쩌면 김연수 선생님이 신작을 내놓기까지 걸렸던 8년과 닮았는지 몰라요. (제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8년 동안 선생님은 어수선한 사회 속에서 창작자로서의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지난 세월 동안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시기도 있었고, 마음 아픈 사건도 많았고, 시민의 힘이 모여 새로운 사회를 열기도 했죠. 사회적인 변화와 더불어 선생님 개인적으로도 쉼 없이 달려온 창작자로서 나아가 길을 고민하셨던 것 같아요.

실제로 쓰면서 위로가 많이 됐다는 선생님의 인터뷰 속 말에서 8년의 노고를 읽을 수 있었어요. 소설가 김연수로서 기행(백석의 본명,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란 이름을 빌려서 자신의 고민과 방황을 풀어놓은 것이 아닐까요?

선명한 사회주의 노선을 글에 담을 것을 요구하던 조국과, 사투리와 지명과 고향 그리고 우리의 정서가 묻은 말을 조합하며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었던 시인으로서의 욕망. 그 속에 놓여 있지 않으면 누구도, 아니 아무도 알 수 없죠.

저절로 생겨나 숲 전체를 태운다는 천불이 기행에게 어떤 뜨거움을 주었던 것처럼, 천불이 '연소'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재생'으로서 김연수 선생님에게 의미를 주었던 것 같아요. 정확히는 써야만 하는 어떤 이유를 스스로 발견하셨는지도 몰라요.

소설 속에서 등장한 러시아의 시인은 문학 속에서 열매 없는 사과나무를 열매 있는 사과나무로 둔갑시킬 수 있다고 해요. 반면에 벨라는 기행에게 이렇게 말해요. "폐허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것이 시인의 일이에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소설가의 일은 꾸밈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요? 선생님이 <작가란 무엇인가> 서문에 썼던 것처럼 모든 것을 태운 연소의 결과로서 나타난 그을음을 이 작품에서 볼 수 있었어요. 부디 절필하지 않고 오래오래 써주시길.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 올린 글입니다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은이),
문학동네, 2020


#한국소설 #김연수 #백석 #일곱해의마지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2. 2 7년 만에 만났는데 "애를 봐주겠다"는 친구
  3. 3 스타벅스에 텀블러 세척기? 이게 급한 게 아닙니다
  4. 4 아름답게 끝나지 못한 '우묵배미'에서 나눈 불륜
  5. 5 [단독] 김건희 이름 뺀 YTN 부장 "힘있는 쪽 표적 될 필요없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