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공공의료 놓고 호주 의사들도 시끌

[호주 현지에서] 의료수가 현실화가 어려운 이유

등록 2020.09.03 18:17수정 2020.09.03 18:17
1
원고료로 응원
 

멜버른에 있는 로열 멜번 병원 ⓒ 위키미디어

 
한국에서 의사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원격 진료 허용을 큰 축으로 하는 의료 정책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필수 의료 분야의 의료수가(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의사나 약사 등의 의료 서비스 제공자에게 제공하는 돈)를 높이고, 권역 의료 센터도 대형화·집중화 해야 한다는 의사단체의 주장도 주목받고 있다.

의료수가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호주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호주 의사들의 불만

호주는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메디케어라는 의료 제도를 운용한다.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한 호주 국민도 44%에 이르지만 대부분 공립병원에서 무료로 검진과 치료를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호주 정부 예산에서 의료비 지출이 매년 급증하고 있다. 일부 주정부의 경우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의료비로 지출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메디케어 재정 안정을 위해 2013년부터 1차 의료기관(일반의 General Practitioner GP) 의료수가를 동결했다(GP는 한국으로 치자면 동네 의원이다. GP가 추천서를 써줘야 전문의가 있는 2, 3차 의료기관에 갈 수 있다).  

물가인상률만큼이라도 수가를 인상해 달라는 GP의 요구가 거세자 결국 정부는 2019년 7월 동결을 폐지하고 매년 물가상승분을 수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물가인상률이 반영되기 시작했지만 GP는 의료수가 인상률이 물가인상률에 미치지 못한다며 추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GP가 20분 넘게 환자를 진찰할 경우 받는 의료수가는 우리나라 돈으로 3만 3천 원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호주의사협회도 GP를 거든다. 의협은 GP의 수가를 동결했을 때도 2, 3차 진료 기관에 대한 의료수가는 매년 인상해 왔다며 그 차별을 해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어 GP의 수가를 올리는 것은 단순히 의사들의 소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의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투자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GP의 역할이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그 근거다. 의협은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면 만성 질환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은 만성 질환 치료에 드는 비용의 10%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의협은 또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환자들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며 이 때문에 환자들에게 추가 비용을 청구하는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호주 정부는 왜 의료수가를 과감하게 올리지 못할까?  

나한테 돌아오는 게 없는데 왜?

의료수가를 현실화하려면 메디케어세를 더 걷어야 한다. 문제는 호주 국민들이 돈을 더 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주 정부는 일정 소득 이상의 가구에 과세 소득의 2%를 메디케어세로 징수하고, 민간 보험사로부터 받은 공립병원 이용료, 그리고 다른 여러 기금을 합쳐 공공 의료 서비스 재원을 마련한다.

호주에서 모든 의료비가 무료라는 말은 사실 틀린 말이다. 공공병원의 치료비와 입원비는 무료지만 그 외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는 환자 개인과 정부가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한다. 아웃 오브 포켓(Out-of-pocket)이라 불리는 환자 개인 부담금의 평균액은 한번 방문 시 전문의 상담의 경우 약 12만 원, 일반의(GP) 상담의 경우 약 1만5천 원 정도다.

여기에다 메디케어세를 내고, 44%의 국민이 민간 보험료를 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호주인들의 의료비 부담률은 낮지 않은 것이다.

의료비 부담률 외에도 메디케어세 인상이 어려운 이유는 메디케어의 지출이 일부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메디케어 예산의 약 25%는 환자들의 마지막 6년간의 여생을 위해 지출되고, 50%는 인구의 5%에게 지출된다. 반면 인구의 50%는 메디케어 예산의 3%만을 소비한다.

메디케어 예산의 상당액이 신기술과 신약 개발 비용의 보전을 위해 쓰인다는 것도 메디케어세 인상을 막는 원인 중 하나다. 신기술과 신약이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고 일부 환자만을 위해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게 돌아오는 게 없는데 왜 메디케어 기금을 더 내야 하느냐는 것이다.
  
재원 마련을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

메디케어세 인상이 여의치 않자 정부는 설탕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설탕세는 설탕 섭취로 만성질환자가 늘어나고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설탕이 함유된 음료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2010년 이후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도입이 확산했고 2016년 세계보건기구가 설탕세 도입을 권고한 후 아시아와 남미 국가에서도 도입하고 있다. 

정부가 검토하는 또다른 대안은 1차 진료 기관을 만성 질환자를 위한 맞춤형 돌봄센터(Health Home Care)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메디케어는 월 일정 금액을 GP에 지급하고, GP는 이 비용 한도 내에서 만성질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예산 한도 내에서만 메디케어세를 지출할 수 있다.

메디케어 재정 안정화를 위한 또다른 방법은 민간 보험의 활용이다. 정부는 민간 보험 가입을 장려하고 있다. 공립 병원에서도 민간 보험을 사용(개인병실 등의 혜택 제공)하게 하는 대신 그 비용을 보험회사로부터 받아 공립 병원 운영비에 보태기 위해서다. 민간 보험 활성화가 호주 의료 시스템의 '미국화'를 초래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정부는 보험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하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호주 의료 제도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 한시적이지만 정신 건강 관련 원격 의료가 허용됐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의사가 담당해 왔던 간단한 진료를 간호사가 하도록 허용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의료 신기술도 필요하지만, 과연 공공 재정으로 어쩌면 소수 환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신기술을 어디까지 개발해야 하는지도 논쟁거리다.

의사 파업으로 혼란스러운 한국 못지않게 호주도 의료제도 개혁이 이슈가 되고 있다.
#호주 #의료수가 #메디케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2. 2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3. 3 "물 닿으면 피부 발진, 고름... 세종보 선착장 문 닫았다"
  4. 4 채상병 재투표도 부결...해병예비역 "여당 너네가 보수냐"
  5. 5 '질문금지'도 아니었는데, 대통령과 김치찌개만 먹은 기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