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5일 오전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 건설 현장에서 강정마을 주민들과 단식투쟁에 들어간 신구범 전 지사(가운데)가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있는 그대로의 평화'를 원했던 강정은 사라졌다. 구럼비 바위에 새겨져 있을 어린 시절들의 추억은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갇혀있다. 양양한 바다를 보며 미래를 품었던 거친 파도가 있던 자리는 이제 군함들에 내주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 시대 군사학 교리는 로마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 교리는 현실 세계를 압도하며 '팍스 로마나' 시대를 거쳐 '팍스 아메리카' 시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강정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공권력은 일시적으로 '사과한다', '소통하자' 한 적은 있었지만, 지난 4800여 일 동안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라'는 종교의 가르침을 힘으로 압도해 왔다. 대통령이 누구였든 간에 우리가 보아왔던 '있는 그대로 권력의 모습'이었다.
최근 제주 출신인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강정마을을 찾아 사과했다. 대단한 일처럼 행정대집행 비용 취소를 선물로 포장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2021년 국방 예산안에 따르면, 오히려 제주해군기지 인력 보강 등의 계획이 잡혀 있다. (관련 기사:
2021년도 국방예산 52조9000억 편성... 올해 대비 5.5%↑ http://omn.kr/1orgw)
정부가 타협안이라며 작명한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지만, 사실 해군기지일 뿐이다. 코로나19 시대 이전부터 약속했던 15만 톤 크루즈는 오지 않았다. 대신 원희룡 도지사는 도민 세금으로 선진지 견학이라며 일부 주민들에게 크루즈 견학을 보내준 적이 있다. 태풍 예보가 내리면 행정기관인 서귀포시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 이라는 말 대신 솔직하게 '제주해군기지 앞 도로 주의하라'는 문자를 보낸다.
가속화되는 제주 군사기지의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