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텅 빈 교실.
연합뉴스
"수능 시험부터 교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하다못해 영어 듣기평가까지,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을 육성한다는 학교에서 왜 1등부터 꼴등까지 굳이 줄을 세워야 할까."
교직 생활 내내 머릿속을 단 하루도 떠나지 않은 질문이다. 숱하게 선배와 동료, 후배 교사에게 해답을 구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시답잖다는 듯 하나같이 시큰둥했다. 오히려, 등위를 매기지 않을 거라면 굳이 시험을 볼 이유가 없지 않으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변별력'은 초임 시절부터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험의 유일한 존재 이유였다. 학교마다 성적 관리 규정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도 '동점자 처리 기준'이다. 등위를 매기자면, 소수점 몇 번째 자리까지 따지는 한이 있어도, 동점자가 나와선 안 된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등위와 등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얼마 전 진료 거부에 나선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두둔하기 위해 의사단체가 내놓은 '전교 1등 의사' 홍보물을 보고 씁쓸했던 이유다. 1등과 의사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등치시키는 그들의 천박한 인식에 혀를 내둘렀다.
한두 문제로 갈리는 운명
현행 시험 제도에서는 고작 한두 문제 차이로 등위와 등급이 갈리고, 의대 진학의 당락이 결정된다. 운이 좋다면 찍어서도 맞힐 수 있는 그 한두 문제가 당락의 기준이 된다는 것에 우리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제 삼기는커녕 사람들은 그것이 공정하다고 말한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도 시험에 대한 맹신을 달리 표현한 것일 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도 시험에 대입하면 비슷한 의미로 통용된다. 각자의 학업 성취도를 점검한다는 시험 본연의 역할은 사라지고, 공부의 모든 과정과 내용을 지배하는 '독재 권력'이 되었다.
'시험에 나온다'는 교사의 말은 아이들을 수업에 집중시키기 위한 고육책이고, '시험에 나오느냐'는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것이 수업의 전부다. 수능에 출제되지 않거나, 생활기록부에 반영이 되지 않는 교과 수업은 차라리 휴식 시간이다. 아이들도, 교사도 다 그렇게 여긴다.
시험에 철저히 종속된 공부는 껍데기만 남았다. 교육과정에 개설된 과목은 다양하지만, 아이들의 과목 선택은 획일적이다. 교육과정을 개정하며 일성으로 '학생 선택 중심'을 내걸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가 과목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다.
자신이 아무리 좋아하는 분야라도 등위와 등급 올리기가 쉽지 않은 과목이라면 애초 선택에서 배제된다. 대표적인 예가 '소수 선택 과목'이다. 현행 9등급 변별 체계에서는 수강자가 25명 미만인 과목은 상위 4%까지 해당하는 1등급이 나올 수 없어, 선택하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공통 교과를 배우는 고1 과정과는 달리, 고2부터는 자신의 진로에 맞춰 과목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학교마다 10월 즈음이면 개별 과목 선택을 마무리 지은 뒤, 결과에 따라 교과서를 주문하고 새 학년을 준비한다. 이는 다음 해 교사의 수급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교육과정 개정했지만, 현실은...
과거에는 사실상 '교사 선택 중심'이었다. 교육과정에 개설된 것이라 해도 가르칠 수 있는 과목만 펼쳐놓은 뒤 아이들더러 고르라고 했다. 어차피 '상치 교과'를 피하자면, 현실적으로 달리 대안이 없었다. '상치 교과'란 전공하지 않은 교사가 해당 과목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이러한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아이들의 진로 희망에 따른 다양한 과목 선택을 학교가 최대한 보장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선택과 교사의 전공이 불일치하는 경우, 교사가 인근 학교를 돌아다니며 수업하는, 이른바 순회 교사제를 운영하고 있는 지역도 많다.
급변하는 교육 환경에 학교마다 불협화음이 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이들의 선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순회 교사제가 불가피하다면서도, 비 순회 교사의 행정 업무 부담이 대폭 늘어날 것을 우려한다. 당장 순회 교사에겐 주요 업무를 줄 수도 없고, 학급 담임을 맡길 수도 없다.
그런데, 막상 순회 교사제로 인한 고민은 학교마다 후순위다. 여전히 수능의 영향력이 막강해, 대부분 기존의 응시 과목을 그대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대개 학교마다 수능에 대비해 개설하고 중점 지도해온 과목이 고정돼 있어, 아이들이 섣불리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굳이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한 경우, 다른 학교에서 온 낯선 교사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수업이 학교생활의 일부분일진대, 아무래도 매일 학교에서 만나는 교사에게 배우는 것이 효과적일 테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도 순회 교사라면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도 별다른 고민거리는 아니다. 아이들이 과목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해당 과목 수강자의 숫자다. 명문대에서 요구하거나 입시에서 가산점이 주어지는 최상위권 아이들을 위한 과목이라면 모를까, 소수 선택 과목은 학교마다 대부분 폐강이 된다.
과목 선택을 주저하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소수 선택 과목일수록 등급 올리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아직 자신의 적성이 뭔지 모르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부족한 아이들에겐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이는 이미 우리 모두 경험한 바다. 지난 2013년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기 전 한국사는 함부로 응시할 수 없는 과목이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대에 지원한 수험생에게만 필수로 지정된 상태여서, 아무리 '역사 덕후'라 해도 그들과 등급 경쟁을 한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었다.
개인적으론, 당시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반이 개설되지 않아 한국사 대신 한동안 부전공 과목이었던 한국지리를 가르쳐야 했다. 그마저 어려웠을 땐, 다행히 한 해에 그쳤지만, 중국어를 가르칠 때도 있었다. 그때 만난 아이들은 아직도 날 중국어 전공자로 알고 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시험
수능 필수 과목 지정보다 더 중요했던 건, 기존의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꿨다는 점이다. 만약 수능에서 그대로 9등급으로 평가했다면, 한국사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학습 부담과 고통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현재 수능에서 절대평가인 영역은 한국사와 영어, 둘 뿐이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교육과정을 바꾸고 다양한 과목을 개설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저절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배움에 대한 의욕을 북돋우고 자발성을 키우려면, 1등부터 꼴등까지 일렬로 줄 세우는 시험부터 없애야 한다. 이제라도 시험의 본령에 충실할 때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시험은 공정성이라는 허울을 쓴 채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경제적 양극화를 방치하는 주범으로 전락했다. 이미 수능도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저 일렬로 줄 세워 승자와 패자를 정하는 시험일 뿐이다.
수능이 대표적인 사례일 뿐, 이는 모든 시험이 지닌 한계이자 본질이다. 등위와 등급으로 공부를 다그치는 시대는 지났다. '도덕 시험 점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도덕성이 높다'는 명제가 항상 참으로 증명되기 전까지는 시험은 그저 공정을 가장한 강자의 면죄부일 수밖에 없다.
고1 아이들의 내년에 배우게 될 과목 선택 결과를 들여다 본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작년, 재작년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것만 보면, 학년마다 서로 다른 교육과정을 적용받는다는 사실이 무색할 지경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적성과 진로보다 등위와 등급에 더 민감하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은 그렇게 형해화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한두 해 근무한 교사라면 해법을 모르진 않는다. 다만, 부끄러움도 모르고 '전교 1등 의사' 운운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시행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며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다.
전공은 해당 교사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곧,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과 순회 교사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자면,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급 담임과 행정 업무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교사는 수업으로 말해야 한다.
아울러, 등위와 등급을 산출하는 기존의 상대평가를 모조리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합격과 불합격만 가르는 자격시험으로 치러진다고 해서, 아이들의 학업 수준이 낮아질 거라는 건 기우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고작 한두 문제로 당락을 결정하는 건 야만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다. 어려서부터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온 아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으로 자라날 리 만무하다. 아직도 교문에 'SKY'와 의대 합격자 명단을 내건 학교가 부지기수인 현실에서, 이 글이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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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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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 이대로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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