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소양로3가 춘천고등학교에서 3학년생들이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총 30문항의 수학 영역 시험 시간은 100분이다. 필수 과목인 한국사와 2개의 탐구 과목을 한꺼번에 치르는 4교시 탐구 영역을 제외하면 가장 길다. 그런데도 적잖은 아이들이 시간이 부족하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이유가 바로 이 두어 개의 고난도 문제 때문이다.
두어 개 '킬러 문항'의 답을 찾는 데 들이는 시간이 나머지 문제 전체를 푸는 시간보다 더 많이 걸린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시험 도중 '킬러 문항'에 애면글면하다간 자칫 시험 전체를 그르칠 수도 있다. 물론 대다수 아이에겐 그냥 '패싱'하는 문제일 뿐이다.
한 수학 교사는 30문항 중 그 두어 개만 '수학'이고, 나머지는 '산수'라고 말했다. 심지어 웬만한 아이들이라면 문제지 여백에 연필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적지 않다고도 했다. 초등학교와 대학교의 수준이 공존하는 시험이 곧, 수학 영역이라는 거다.
아이들은 '킬러 문항'의 번호까지 모두 알고 있다. 대개 마지막 30번 문항은 보나 마나 고난도 문제고, 선다형 문제가 끝나는 21번 언저리에 또 다른 '킬러 문항'을 꽂아 놓는다는 거다. 만약 찍을 수도 없는 30번 문항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그는 최상위권 학생임이 틀림없다.
최상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에게 21번과 30번은 아예 없는 문제나 마찬가지다. 한 아이는 자신에게 수학 영역은 28문항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나마 21번은 당일의 컨디션과 운을 가늠해보는 잣대가 된다며 웃었다. 찍을 수 있는 선다형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21번 선다형 문항의 정답률이 딱히 높은 것도 아니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개 10%를 넘지 못한다. 상식적으로 다섯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문제에서 정답률은 20% 안팎이 되어야 정상인데, 그 절반도 안 된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수학 교사들은 '풀 수 없는 문제를 굳이 풀려고 하니 그렇다'고 말한다. 시험 시작 전에 애꿎은 시간만 허비될 테니 그냥 21번과 30번은 무조건 찍으라고 귀띔하는 교사도 있다고 한다. 최상위권이 아니라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요령이다.
교사들은 9등급 상대평가에서 등급을 가르자면 고난도 문제를 끼워 넣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이유를 댄다. 어려운 시험이 사교육 유발의 주범이라며, 문제를 쉽게 출제하라는 압박이 거센 터다. 하물며, 고등학생 절반이 '수포자(수학의 포기한 학생)'는 현실임에랴.
교육과정평가원에 묻고 싶다. 수학 교사조차 쩔쩔매는 수준의 고난도 문제를 출제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교육적 가치는 무엇인가. 오로지 등급을 매기기 위해 모든 아이를 골탕 먹여도 되는가. 최상위권 2%를 추출하기 위해 98% 아이들을 들러리 세우는 게 과연 교육인가.
물론 수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태 전 절대평가로 바뀐 영어 영역에서도 기존의 4%, 11%, 23% 등 등급 비율을 고려해 난이도를 조절해왔다. 1등급의 기준인 90점 이상의 수험생 수가 4% 근처에서 형성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에게 영어가 결코 쉽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이들에게 수학 공부를 포기한 이유를 물어보면, 어차피 찍는 게 더 점수가 잘 나오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가성비' 떨어지는 과목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보다 다른 과목을 공략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거다. '수포자'는 그렇게 하염없이 늘어나는 추세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