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2018년 1학기 수업이 아닌 자유 시간에 배드민턴과 탁구를 치던 14세 여중생 제자들을 '가르친다'는 명분으로 손목을 쥐거나 허리를 감싸 안는 등 추행을 저질렀다. "선생님 그만 놓아주세요"라고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막무가내였다. 학교 측에 피해를 호소한 학생만 1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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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여학생들과 그 부모들은 스승인 피고인으로부터 당한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 삼는 과정에서 학내외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와 정신적 피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다.
2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본 또 다른 지점은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한 가해자의 위치였다. 학교에 추행 사실을 호소한 14명 중 12명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한 맥락을 해석한 대목이다. 1심 재판부는 단순히 12명이 수사에 응하지 않은 사실을 언급, 이를 무죄 판단에 활용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달랐다. 재판이 끝나도 이어지는 '스승-제자' 관계는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으며, 이는 무죄의 근거 또한 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피해를 당한 후 가해 선생과 종전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사건화 이후 수사기관과 법원에 진술하는 것에 부담감을 토로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고 짚었다.
18세 축구부 소속 여고생의 허벅지에 손을 올린 고교 체육교사에게 강제 추행죄를 적용한 또 다른 판결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지도자-제자' 관계를 언급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2018년 8월 1심 판결에서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16세 여고생이고 피고인은 30세가 넘는 성인의 남성교사"라면서 "기본적으로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가 수평적일 수가 없다"고 판시했다. 평소 피해자와 피고인이 친밀한 사제지간이었다 해도 "일상적인 신체접촉을 넘어서 치마 아래 허벅지를 만지는 것은 용인되는 관계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맥락] 아내와 딸까지 동원한 탄원서에 "그래도 실형"
앞서 다룬 대구고법 항소심 재판에선 교직 유지 여부, 피해자들과의 합의 상황으로 가해자의 죄를 가볍게 물지 않았다. 다수 스포츠 성폭력·폭력 판결의 양형 이유에서 가해자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된 부분들이었다.
재판부는 교육공무원법상 미성년자에 대한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으로 형이 확정될 경우 교육공무원상 결격 사유로 퇴직하게 된다는 점을 콕 집어 "피고인이 교원 신분을 유지할 수 없는 사정이 있더라도 주문과 같이 벌금형에 처함이 마땅하다"고 못 박았다.
피해자들이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곧 가해자의 혐의를 씻는 것은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후 사정에만 초점을 맞춰 피해자들이 당시 피고인의 행동을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로 여기지 않고 있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가해자 사정보다 피해 맥락에 초점을 둔 사례는 또 있다. 광주 고교 여자 배구부 코치의 강제 추행에 대한 2017년 7월 광주지법 1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 재판부는 피고인의 아내와 딸, 가족, 제자, 학교장은 물론 광주배구협회장까지 나서 가해자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한 사실에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실형을 선고해 교육자의 피교육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므로 형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결론은 징역 2년 실형 선고였다. (관련 기사:
"성추행 알리면 배구부 해체" 한 마디에 동료마저 등 돌렸다 http://omn.kr/1oxwo)
지도자와 제자. 스포츠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폭력 사건의 대부분은 늘 상하 관계의 구조 위에서 발생한다. 재판부가 가해자의 경력이나 지도 방식의 불가피함 등을 고려하기에 앞서 피해자가 훈련 당시 느낀 상황적 맥락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되는 까닭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 2019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으로 작성한 '스포츠 분야 성폭력/폭력 사건 판례 분석 및 구제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객관적으로 신체 접촉이 필요한 상황일 경우에는 피해자의 주관을 중심으로 상황적 맥락을 세밀히 살펴 해결해야 한다"면서 "(재판부는)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행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 현직 판사는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피해자의 진술권은 형법과 헌법에도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재판에서 중요하게 작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 같은 (스포츠 성폭력) 사건에선 피해자 중심주의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지만, 주류는 아니다"라면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재판에서 많이 소외돼 있는데, 절차적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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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코치 봐준 그 판결] 특별기획 바로가기 http://omn.kr/1oz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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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체육교사 '무죄' 깨부순 판사, 탄성 나오는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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