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등산은 과정이 비슷해"

[인터뷰] 여도초등학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하며 작곡하는 교사 이종만씨

등록 2020.09.29 12:05수정 2020.09.2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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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생을 결정하는 건 무엇일까? 유전적 요인? 아니면 환경적 요인? 무엇이 앞선다고 확답할 수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아! 그거였구나!" 하는 탄식이 나올 때가 있다. 30년 이상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낀 생각은 유전적 요인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값진 결과를 쌓은 학생을 볼 때면 더 큰 박수를 보냈다.


어린 학생들만 그런가? 어른도, 교사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근무했던 학교는 초중학교가 한 캠퍼스에 있는 사립학교였다. 초중학교 교직원이 모두 모일 때는 100여 명이 됐지만 모두 얼굴을 알고 지냈다. 필자는 중학교에 근무했지만 초등학교에서 유독 눈에 띄는 교사 한 분이 있었다.
 
 음악과 등산에 심취한 이종만 교사 모습
음악과 등산에 심취한 이종만 교사 모습오문수
 
이종만(59세) 교사! 여도초등학교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작곡을 하는 교사다. 그가 내 이목을 사로잡은 건 30여 년 전 그와 함께 동남아시아 여행을 했을 때였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 날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당 중앙에는 대나무로 된 인도네시아 전통악기가 하나 있었다.

얼른 식사를 마친 이종만 교사가 실로폰 채처럼 생긴 막대로 대나무를 두드려 보더니 곧바로 세계 명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과 호텔직원들은 손을 놓고 음악을 들으며 깜짝 놀랐다. 그의 연주가 끝나자 식당에 모인 관광객들은 큰소리로 환호하며 여러번 "앙코르!"를 외쳤다.

이종만의 첫 번째 길... 20세부터 40세까지는 음악인의 길로
 
 오스트리아 빈필연주홀에서 여도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종만 교사
오스트리아 빈필연주홀에서 여도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종만 교사이종만
 
지난주 여도초등학교를 방문해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음악가인 줄로만 알았던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가 등산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전국 100대 명산을 등정하고 500개 산을 올랐다.

그의 인생은 음악과 등산의 두 가지 길로 나뉜다. 20세 이전에는 음악과 무관했지만 교대에 진학한 이후에 오르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접했다. 음악을 시작하자 담당교수가 "남다른 재능이 있다"며 음악인의 길로 가라고 추천해줬다.

교대 졸업 후 9년간 초등학교에 재직한 후 30세에 경희대 음대 작곡과에 진학해 36세에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원 졸업 후 여러 대학에 강사로 재직하다 여수에 있는 여도초등학교 교사로 새출발했다(2003년).


여도초등학교에 재직하면서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를 19번 하는 틈틈이 200곡을 작곡했고 편곡은 1000곡도 넘는다. 2007년에는 여도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끌고 유럽 8개국 순회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1987년 제5회MBC 창작동요제에서는 <고향길>로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작곡한 노래 중에서 자부심을 갖는 노래는 <청석포>이다. 그의 음악적 재능이 궁금해 "언제부터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뉴스를 제외한 시간에는 24시간 음악방송을 들었어요. 그 영향인지 저는 지금도 KBS TV 가요무대를 매주 봅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감이 뇌리에 새겨진 것 같아요."


전남 화순이 고향인 그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오르간을 연주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운좋게도 그의 담임교사는 바이올린을 전공한 음악인이었다. 그의 음감이 뛰어난 것을 안 담임교사는 오르간 한 곡을 가르쳐준 후 3학년에 불과한 이종만 학생을 조수로 데리고 다니며 학생들을 지도하게 했다. 당시 담임교사는 "너는 청음력과 시창력이 뛰어나니 음악을 한 번 해봐라"고 격려해줬다.

40부터는 등산인의 길로... 혼자서 묵상하며 전국 산 500개 이상 올라
 
 한라산 정상에 선 이종만 교사 모습. 그는 "음악과 등산이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라산 정상에 선 이종만 교사 모습. 그는 "음악과 등산이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종만
 
그의 두 번째 길은 등산이다. 베토벤이 그랬듯이 그는 혼자 묵상하며 걷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 시작한 게 등산이다. 산의 매력에 빠진 그는 지리산부터 시작해 전국 100대 명산을 등정했다. 매 주말이나 방학 때 혼자서 산을 오른 숫자가 500개가 넘는다. "혼자 등산에 나선 이유와 혼자 다니면 외롭지 않았는가?"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산악회 가입하는 게 싫었고 내가 편한 시간에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어서요. 외로웠냐고요? 전혀 외롭지 않았어요. 남들과 어울리지 않았기에 코로나 사태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죽기 전까지 음악과 등산을 계속하겠다는 그는 지금도 영상을 통해 트럼본과 오보에 레슨을 받고 있다. 그는 BTS나 한류 문화의 성공 요인을 한글의 우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언어로는 한글의 '표정연기'를 그려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계 어느 나라 노랫말도 한글로 개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그는 미국 작곡가 포스터의 <주인은 차디찬 땅속에>라는 곡을 작사가 윤석중씨가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를 예로 들었다. '높은 하늘에 떠있는 기러기를 부른다' 는 의미의 가사는 '~저어~' 선율에 맞게 개사했다.

"가수 배인숙의 노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는 프랑스 샹송 <Un Poete>를 개사했는데 원곡보다 더 어울리게 개사했어요. 한류 문화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것은 한글의 힘 때문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려는 데 곧바로 영상을 통해 트럼본 연주를 시작하는 그를 보며 이종만의 음악사랑은 아버지가 은연중 보여준 음악 사랑과 그의 끊임없는 노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이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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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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