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종이에 글을 쓰고> / 뉴칭궈 /안태운 옮김
북인
보고 있는 세 권의 시집 중에서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시집이다. 농촌에서 나고 자란 내 삶의 이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내 유년의 추억 아닌 추억들도 떠오른다. 그의 시 속엔 늘 흙과 더불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뉴칭궈는 중국 서북 고원지대에 위치한 간쑤성에서 나고 자랐다. 간쑤성은 황토고원과 텅거리사막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그가 자란 지역은 농촌 마을이다. 시집 속의 시편들이 팔구십년대 중국 시골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의 60~70년대 농촌의 모습들이 시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그 속에서 가난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모습들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지난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 아버지의 밭갈이를 돕던 나귀 / 늙었다 / 그의 노화는 / 앞다리를 바닥에 구부리고 / 아버지가 힘껏 밀어야 겨우 일어서서 / 수레를 언덕 위로 끌어올리던 / 그날부터 / 그날 아버지는 / 마치 오랜 친구의 팔을 어루만지듯 / 나귀의 여윈 다리를 쓰다듬었다 / 늙었어, 우린 모두 늙었다고 / 어쩌면 나귀는 자신이 더 이상 쓸모 없다는 것을 / 알고 있으리라/ (하략)…….
- <나귀는 늙고> 중에서
나는 나귀에게 또 편지를 써야 하네 / 집 대문에 들어서기 전 / 나는 먼저 나귀를 보고 말았는데 / 겨울의 나른한 햇빛 아래 /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 벗어날 수 없는 졸음이 / 그의 생명을 짓누르고 있는 듯 / 못 본 지 일 년 / 그네는 귀를 가볍게 팔랑거리며 / 마치 황혼의 노인처럼 / 나를 향해 야위고 마른 손을 / 흔들고 있었지// <중략> 그래 나는 / 그 녀석을 털털거리는 트렉터에 싣고 / 도시로 끌고 가는 모습을 상상했지 / 마치 그해 내 당숙께서 / 도시로 치료하러 끌려가던 그때처럼 / 끌려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 한 마리 나귀의 생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랴
- <나귀에게 다시 쓴 편지> 중에서
뉴칭궈 시의 주된 글감들은 시인이 늘 접하고 숨 쉬던 것들이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우리와 함께 숨 쉬는 것들이다. 특별한 게 없다. 가끔은 시인 백석의 냄새도 난다.
그의 시의 원천은 고향이다. 그리고 가족이다. 시 전편에 흐르는 것들이 고향이고 가족과 친척 그리고 이웃이다. 그런데 고향의 모습을 노래하지만 결코 목가적이지 않다. 가난과 아픔의 촌의 모습과 그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의 꿈틀거림이 있다.
뉴칭궈의 시편들을 보면 고향, 나귀, 살구나무, 옥수숫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고모, 사촌 등이 자주 등장한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어가 나귀와 살구나무다. 나귀와 살구나무는 고향을 떠올리는 매개체다. 특히 늙은 나귀는 늙은 아버지이면서 당숙이기도 하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머물면서 고향을 생각하거나 고향에 돌아오면 제일 반갑게 맞이해주는 게 나귀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에서 '제가 대지와 고향과 가족과 친척들에게 쓰는 생명의 글'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쓴 시들을 어루만져 보면 한 겹 한 겹 영혼의 굳은살이 느껴질 거라 말한다. 그의 말이 아닐지라도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느껴진다.
사이토 마리코의 <단 하나의 눈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