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성향에 따라 무죄와 유죄가 결정되는 법"

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회 오픈스터디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어-주인되기'에 가다

등록 2020.10.14 14:00수정 2020.10.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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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진보당 중앙당사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어 – 주인되기>의 첫 번째 세미나가 열렸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어 – 주인되기>는 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 위원회가 준비한 오픈 스터디로, 한국 사회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바로 알기 위한 대학생들의 소규모 세미나다. 국가보안법은 민중들의 목소리를 억눌러온 대표적인 악법으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왔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어 – 주인되기>는 국가보안법의 기원부터 폐지의 법률적 쟁점까지, 국가보안법의 A to Z를 파헤친다. 첫 세미나의 강사로는 이창훈 4‧9 통일평화재단의 사료국장이 나섰다. 
 
 강연 중인 이창훈 4?9평화통일재단 사료국장
강연 중인 이창훈 4?9평화통일재단 사료국장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회
 
외세가 낳은 국가보안법: 치안유지법과 국방경비법

국가보안법에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같은 해에 제정되었으니, 대한민국과 역사를 같이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의 토대는 그보다 이전에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과 미군정 시기 국방경비법이 바로 그것이다.

치안유지법은 1925년 일본에서 사회주의 탄압을 위해 제정되었다. '국체를 변혁할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고 활동하는 이들을 처벌하는 치안유지법은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에도 적용되었다. 사상범을 통제한다는 목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이는 데에 활용된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연좌제를 적용하여 처벌 대상 본인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구속 대상으로 삼은 것은 치안유지법과 꼭 닮은 부분이다.

일제가 치안유지법을 만들었다면, 미군정은 국방경비법을 만들었다. 철저한 반공주의하에 친일파를 주요 인재로 기용했던 미군정은 여운형, 김원봉 등의 인사들이 좌우합작을 통해 친일파를 배제한 정부를 세우려는 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 과정에서 국가보안법과 국방경비법 등이 만들어졌는데, 박정희 정권은 국방경비법을 톡톡히 활용했다. 세계 최장의 수감 기록을 가진 김선명씨뿐 아니라 수많은 장기수가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수십 년의 옥살이를 했다. 이창훈 국장은 "실내용을 보면 (국방경비법은) 간첩 잡는 법이 아니라 간첩 만드는 법이었다"며, 다행히 최근에는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정권 유지를 위한 최고의 수단, 국가보안법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건 혁명 공약 1호는 반공을 국시로 삼는 것이었다. 정권을 잡은 지 불과 한 달 만에 박정희 정권은 반공법을 제정했다. 국제적인 냉전의 영향은 한반도를 비껴가지 않았고, 정권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내란음모·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기고한 글이나 작품 등을 빌미로 지식인들을 잡아들였던 필화사건 등이 반공법을 활용한 탄압의 대표적인 예다.

박정희 정권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유화 조치의 일환으로 반공법을 폐지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반공법의 내용이 국가보안법으로 옮겨간 것에 불과했으며, 오히려 이를 계기로 국가보안법은 80년대부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은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치며 강화되기도, 약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 세력을 제압하는 데에 활용되었고, 그 결과 입맛에 따라 어떻게나 적용할 수 있는 법이 되었다. 이창훈 국장은 "지금도 국가보안법은 (같은 사건이라도) 검사와 재판장의 성향에 따라 무죄가 되기도, 유죄가 되기도 한다"며 "국가보안법이 없어지지 않으면 반인권적인 법 집행이 사라질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회 국가보안법 오픈스터디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어 - 주인되기> 포스터
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회 국가보안법 오픈스터디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어 - 주인되기> 포스터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회
 
수많은 공안 사건들, '피해자'로만 봐서는 안 된다


평화와 통일을 말하며 정권에 반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법은 국가보안법 말고도 수없이 존재했다. 앞서 다룬 국방경비법을 포함해서 정치활동 정화법, 국가보위법, 보안법 등 수많은 법이 이름만 바꾸며 공안사건을 만들어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5‧16쿠데타 직후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이전 사건들에까지 법을 소급적용했다. 이창훈 국장은 "반인권적인 법에 소급입법이 적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공안을 위해 소급입법을 한 사례는 전 세계에 없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4·19혁명 이후 남북학생회담, 민족자주통일중앙의회 등에서 활동한 수많은 통일 원로들이 옥살이를 했으며, 조사받은 사람만 6천 명이 넘는다.

그러나 이창훈 국장은 진보당 사건, 남민전 사건 등을 언급하며 "이들을 단순히 반공법 피해자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를 강조했다. 국가보안법이 '막걸리 보안법'으로 불리며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가기도 했지만, 반독재와 통일운동에 목숨 걸고 임했던 사람들 역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이들은 사회민주주의 세력, 즉 혁신 세력으로 독립 운동가들의 영향을 받아 민족적으로 각성한 이들이었다. 국가보안법의 칼날 너머에는 민주민족청년동맹, 통일민주청년동맹 등 조직적인 운동의 기틀을 다지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이들이 있었다.


역사 속에서 조봉암의 진보당은 이승만 정권에 의한 정치탄압의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이창훈 국장은 진보당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평화통일을 이야기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1953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하며 휴전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 후 오로지 북진통일만이 이야기되던 때에 진보당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분단된 민족을 통일하자는 내용을 강령에 넣은 것이다. 7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민중들을 억압해온 국가보안법은 남북의 평화 분위기 속에서 폐지될 수 있다. 2020년에도 진보당이 있다. 마찬가지로 남북의 통일과 평화를 이야기한다.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빼놓을 수 없고, 그 중심에는 진보당이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진보당 #청년진보당 #이창훈 # 4?9 통일평화재단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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