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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형문화재 장인의 한탄 "나 죽으면 할 사람이 없어"

한평생 짚을 엮어낸 초고장 무형문화재 임채지 장인을 만나다

등록 2020.10.20 09:39수정 2020.10.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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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은 한창 나락 수확 중이다. 여름 태풍에 쓰러진 벼들도 콤바인의 입속으로 들어가면 그 흔적은 사라진다. 이른 벼는 진즉에 수확을 해 그루터기에 다시 파란 싹이 올라와 있는 모습이다. 예전과 달라진 모습은 사람의 손이 아닌 기계를 이용해 벼를 수확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릴 때 이맘때면 부모님 따라 늘 들녘으로 향했다. 작은 손에는 큰 낫자루가 들려있었다. 온 가족이 모여 아침부터 서녘 산 너머로 해가 질 때까지 나락을 베곤 했다. 그렇게 벤 나락을 논바닥에 깔아놓고 어느 정도 마르면 또 묶는 일을 했다. 그리곤 묶은 나락을 십자가 모양으로 낟가리를 했다.


그렇게 또 몇 주가 지나면 어른들은 지게 위에, 아이들은 양손으로 소달구지(소구루마)나 손수레(리어카)가 있는 곳으로 볏단을 옮긴 후 그걸 소달구지에 실고 집 앞 논까지 옮기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옮긴 나락들은 석기시대 움집이나 피라미드마냥 높이 쌓아놓고 몇 주가 흐른 다음 타작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숙성된 지푸라긴 다시 짚단이 되어 마당 한쪽에 산성의 성곽처럼 쌓아놓았다.

짚단은 농촌에서 일 년의 일용거리다. 겨울 동안 아궁이의 땔감은 물론이고 일 년 농사의 마무리라 할 수 있는 초가집의 지붕을 얹기 위해 이엉과 용마름을 엮는다. 이엉을 엮고 지붕을 얹는 일은 손때가 꼼꼼한 사람의 일이다. 특히 지붕을 얹을 때 잘못하면 바람에 날아가거나 비가 새기 때문에 전문적인 꼼꼼한 솜씨가 있어야 했다. 특히 지붕 맨 위에 얹는 용마름을 잘못하면 지붕 일이 헛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지붕을 얹은 일이 다 끝나면 다시 울타리 작업을 했다. 울타리 작업이 끝나면 남정네들은 사랑방에 모여 겨우내 새끼를 꼬았다. 솜씨 좋은 사람들은 새끼를 꼬아 짚신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아이들도 어른들 옆에 앉아 새끼를 꼬며 작은 일손이 되거나 놀이기구를 만들어 놀곤 했다.

초고장 무형문화재 임채지 장인(匠人)
  
 초고장(짚풀공예) 전수관. 이곳에서 임채지 장인(匠人)은 작업 하며 머문다
초고장(짚풀공예) 전수관. 이곳에서 임채지 장인(匠人)은 작업 하며 머문다김현
 
초고장(草藁匠), 조금은 생소하고 낯선 이름이다. 초고장은 짚과 풀을 이용해 전통 생활용구와 농업 도구, 민속신앙 도구 등을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일종의 짚과 풀로 만든 공예기술이다.

농경문화와 함께 선조들은 짚풀을 이용해 각종 생활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녔다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짚으로 만든 도구들은 흔하고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여자들은 똬리니 달걀 꾸러미 등은 짚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 사용했다. 남자들은 새끼를 꼬아 멍석이나 닭이 알을 낳아 품도록 하는 둥지, 꼴망태 등 물품 정도는 만들어 사용했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짚도구의 역할은 플라스틱이나 다른 것들로 채워졌다. 이젠 초고공예(짚풀공예)란 이름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초고공예는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짚공예, 왕골공예, 초물공예로 나눈다. 짚공예는 보릿대나 지푸라기를 이용해 각종 도구나 작품을 만드는 것이고, 왕골공예는 왕골을 이용해 화문석 등을 만드는 것이다. 초물공예는 버들과 싸리를 이용해 광주리나 채반 등을 만드는 기술이다.
 
 초고장  무형문화재 임채지 장인.
초고장 무형문화재 임채지 장인. 김현
 
지난 10일, 곡성 기차마을 안에 있는 초고장 전수관을 찾았다. 초고장 임채지(84) 장인(匠人)은 전수관 마당에 나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깔끔한 한복을 입고 하얗게 긴 수염에 선글라스 같은 안경이 제법 잘 어울린다. 인사를 나누고 커피나 마시며 이야기하자며 방으로 이끈다.


"이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여."

너털웃음을 웃으며 봉지 커피를 권한다.

처음 그가 있었던 곳은 용인민속촌이었다. 그곳에서 1년 정도 있었다. 그곳에서 한 일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는 일종의 잡일 같은 일이었다. 그때가 젊은 시절이라 힘든 줄을 몰랐다. 그러다 순천에 있는 낙안 민속마을로 옮겼다. 그곳에서 10년 넘게 일을 하면서 많은 일을 했다. 새끼 꼬는 일은 기본이고 지붕을 이을 이엉을 엮었다. 그러다 2006년쯤 이른 살에 고향인 곡성으로 돌아왔다.

"짚공예는 30대부터 했지. 용인민속촌에서 잠깐 일하다 순천 낙안 읍성에 14년 정도 있었고. 그때 많은 일들을 했지."

그의 고향은 곡성 고달면 백곡리다. 전수관에서 오토바이로 20분이면 갈 수 있다며 웃는다. 그는 많은 짚공예로 한국짚풀문화 공예대전 짚 부문 최우수상(2001) 수상 많은 수상과 전시회 및 체험, 짚풀공예 초대개인전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곡성엔 일흔 살 즈음에 왔지. 와서 많은 것들을 만들었지. 그러다 무형문화재도 되고."

임채지 장인(匠人)은 전통 짚풀공예 기술을 인정받아 2013년 12월 전남 무형문화재 제 55호로 지정된다. 그리고 도에서는 전통 짚풀공예의 맥을 유지하고 전파하기 위해 전수관을 지었다. 임채지 장인은 지금 전수관에서 작업하며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눈이 침침해 일을 할 수가 없어. 이젠 숨도 가쁘고. 작년까지만 해도 해도 만들었는데 지금은 못 하고 있어. 글고 만들어도 누가 안 사가니까. 장식용으로 가끔 사갈 때도 있는데 안 사가지."

작년까진 종종 짚신도 만들고 하면서 팔기도 하고 만들기도 했는데 요 근래엔 일을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대부분 무형문화재라 하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어렵다. 가장 어려운 것이 경제적인 문제다. 판로가 없으니 누가 대를 이어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전수자도 찾기 힘들다.

"전수자? 딸이 있지. 아주 잘 만들어. 손재주가 있어. 근디 거의 신경을 안 써. 벌이가 안 되니 안 쓰는 거지. 나 죽으면 할 사람이 없어."
 
 임채지 장인이 머무는 옆방에 두세 평 정도의 작업실. 젊은 날의 사진과 작업 도구들.
임채지 장인이 머무는 옆방에 두세 평 정도의 작업실. 젊은 날의 사진과 작업 도구들.김현
 
전수관 안에는 딸이 머무는 공간도 있지만 생활이 안 되니 거의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짚공예뿐이겠는가. 대부분 국가무형문화재나 지방문화재의 명맥이 끊길 위기다. 전승자의 고령화와 전수자가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전승자나 전수자에게 얼마간의 보조금이 나오나 젊은 전수자가 생계를 꾸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판로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맥이 끊길 위험이 매우 높다.
 
 장인의 손에 만들어진 전시관의 짚으로 만든 여러 동물들. 전시관엔 여러 짚풀공예 작품과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장인의 손에 만들어진 전시관의 짚으로 만든 여러 동물들. 전시관엔 여러 짚풀공예 작품과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김현
 
우리의 짚풀 문화는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다. 볏짚, 밀짚, 보릿짚으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만들어 썼다. 또 산에 있는 갈대나 억새를 이용하거나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해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었다.

그러다 산업화, 공업화와 박정희 정권 때의 새마을 운동 사업을 거치면서 우리의 짚풀 문화는 우리 일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수관을 나오면서 임채지 장인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나 죽으면 할 사람이 없어."
덧붙이는 글 초고장 전수관은 곡성 기차마을 안에 있다.
#짚풀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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