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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임금 올랐다고 1시간 일찍 출근하래요"

[전태일 50주기 기획 - 내 노동을 헛되이 말라 ②]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등록 2020.11.04 21:02수정 2020.11.0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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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는 2019년 기준 22만3058명이다. 이 가운데 같은 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104명이다. 올해는 벌써 42명(6월 기준)이 사망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노동 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안전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이주노동자는 폭행, 폭언, 성폭력, 감금,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 문제를 겪어도 이직을 할 수가 없다. 이직하려면 사장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 취업 기간 3년이 끝난 후에는 1회에 한해 1년 10개월을 연장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사장이 허락해 줘야 한다. 4년 10개월까지 다 채우면 밀린 임금을 못 받아도 강제로 출국해야 한다. 3개월 후 다시 한국에 돌아와 일할 수 있긴 한데 전에 일하던 곳에만 취직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설립됐다. 설립 후 합법화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고용노동부는 10년간 이주노조의 설립 신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노조에 미등록 노동자가 많았고, 이들은 노조 활동을 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 사이 여러 명의 위원장이 강제로 추방됐다. 긴 시간 투쟁 끝에 2015년 대법원에서 미등록 노동자에게도 노조 결성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노조 설립 신고증을 받은 지 5년이 지났지만,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아직도 참혹하다. 2009년에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10년간 노조 활동을 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우리도 사람이고 노동자인데 정부는 이런 생각 안 해요"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개선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뜻이다.

지난 10월 29일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되묻는 질문의 연속이었다. "네? 정말로요?" "아니, 그렇게까지 한다고요?"라고 수도 없이 다시 질문했다.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랬다. 라이 위원장은 차분하게 믿을 수 없는 말들을 했다. 그 차분함은 긴 투쟁으로 생긴 굳은살 같은 거였다.
   
고용허가제는 '노예 허가제'
   
모든 문제의 핵심은 고용허가제에 있다. 고용허가제는 고용노동부가 관장하는 제도다. 고용노동부는 2004년 인력난에 처한 제조업과 건설업 등 중소기업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전엔 산업연수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라 교육생으로 보는 제도였다. 그래서 노동권, 인권을 침해당해도 구제받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불법체류자라 불리던 미등록 노동자는 늘어만 갔다. 이에 정부가 내놓은 게 고용허가제다.

고용허가제의 주요 내용을 쉬운 말로 바꾸면 이렇다. ▲단기 취업의 경우 가족 동반 불가 ▲이직하고 싶으면 사장의 허락을 받을 것 ▲3년 근무 후 1회에 한해 1년 10개월만 연장 가능하지만 사장의 허락 필요 ▲4년 10개월 근무 후에는 무조건 출국 ▲출국 후 3개월 지나면 재입국해 취업 가능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를 이렇게 홍보한다.

"외국인 근로자의 체계적인 도입, 관리를 통하여 중소기업의 인력난 완화와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라이 위원장은 이 제도를 '노예 허가제'라고 말한다.
 
활짝 웃는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만난 라이 위원장이 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다.
활짝 웃는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만난 라이 위원장이 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왜 사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게 허가해주는 제도예요. 사업주 입장에서 만들어졌어요. 노동자가 맘대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실제로 노동자한테는 누구나 직장을 선택하고 변경할 자유가 있잖아요. 헌법 15조에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고요. 그런데 이주노동자한테는 그 자유가 없고, 사업주에게 고용할 자유만 있어요. 그래서 이름에도 '고용'이 들어가는 거예요."

- 임금이 체불되거나, 갑질을 당하거나, 폭언‧폭행을 당한다면 일하는 곳을 바꿀 수도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도 사업주가 "안 돼"하면 못 바꾸나요?
"두 달 이상 임금이 체불되거나, 최저임금을 못 받았거나, 폭행 당했다는 거 증명하면 사업주 허락 없이도 변경할 순 있어요. 그런데 이주노동자가 증명해야 합니다. 폭행을 당했다고 하면 피가 나야 하고 상처가 있어야 해요. 한국 사람은 살짝 친 것도 폭행으로 인정되는데 이주노동자는 상처가 없으면 경찰 신고도 안 받아줘요."


- 그러면 이주노동자는 그냥 견뎌야 돼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업주가 일을 막 시켜요. 기계가 들어야 하는 50kg짜리 물건을 이주노동자한테 들으라고 해요.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곳이 대부분 중소 영세 사업장이다 보니 오래된 기계가 많아요. 제대로 된 안전 장비도 안 주고 한 사람에게 기계 다섯 대를 동시에 돌리라고 해요. 그래서 산업재해가 일어나요. 과로사도 많아요. 최저임금 조금 올랐다고 월급 올랐으니까 일 더 많이 하라고 해요."

- 최저임금 올랐다고 일을 더 시켜요?
"그런 경우가 많아요. 일하는 속도, 생산성, 작업량 올리라고 다그쳐요. 노동 강도가 세고 힘든 일 해야 하는데, 조금 더 좋은 사업장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이탈해요. 이탈하면 미등록 노동자가 돼요.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면 이 사람들이 미등록 노동자가 될 이유가 없잖아요."
  
이주노조 깃발 이주노조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이주노조 깃발이주노조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이주노동자노동조합
 
- 최저임금 올랐다고 일 더 시키면 최저임금을 안 준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그런 곳이 아직도 많아요. 휴가나 일요일 없이 일하고 잔업을 해도 최저임금밖에 안 줘요. 농업이나 어업 같은 사업장은 출퇴근 카드가 없고 노동자가 달력 같은 데 기록해요. 그런데 근로감독관이 출퇴근 기록이라고 인정 안 해주는 경우가 있어요. 사업주가 이거 제대로 된 기록이 아니라고 하면 그 말을 믿어요. 농어업은 최저임금 받으면서 해 뜨면 출근, 해가 지면 퇴근이에요."

- 최저임금의 월급마저도 밀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밀린 임금 못 받아도 4년 10개월 꽉 채우면 출국해야 돼요?
"네. 이게 말도 안 되는 건데 변호사나 노무사한테 일임했으니까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있을 필요 없다고 나가라고 해요. 임금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인데도 한국에 있을 자격 없다고 비자 연장 안 해 줘요."

- 이직도 사장 허락, 1년 10개월 연장도 사장 허락, 밀린 임금을 못 받아도 강제 출국. 사업주 권한이 너무 막강한데요.
"그래서 사업주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오전 8시가 출근 시각인데 7시에 오라고 해도 제가 왜 7시에 가야 되냐고 얘기 못 해요. 월급 올려달란 말도 못 해요. 잘못 찍히면 1년 10개월 연장이 안 되고, 출국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 사업장에서 일해야 하는데 못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 다시 와도 그 사업장에서 일해야 한다고요?
"사업주가 원하면요. 다른 데 못 가요. 그래서 이주노동자가 다시 오기 위해서도 사장님한테 불만이 있어도 말하지 못해요."

- 사장님한테 잘못 보이면 영원히 아웃이네요.
"이런 사업주들 있어요. '너 나갔다(출국했다가) 오면 재고용해 줄게' 하면서 부려 먹어요. 그러다 인천공항에서 출국 비행기 딱 뜨면 고용 허가 취소를 해버려요. 한국에 다시 와서 일하기 위해 아무 불만 표시도 안 하고 참았는데 취소되는 거예요. 권리 보장도 안 되고 착취만 하고.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노예 허가제 말고 '노동 허가제' 필요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하라" 이주노조 조합원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하라"이주노조 조합원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이주노동자노동조합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눌러앉을까봐 취업 기간을 3년으로 제한했다. 그러면서도 사업장에서 도망가 미등록 노동자 될까봐 사장의 허락 없이는 일할 수 없게 했다.

악행은 제도의 허점 속에서 자라난다. 사장에게 고용허가제는 아주 효율 좋은 제도다.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니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일자리가 절실해서 이 환경에도 채용이 된다.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이주노동자를 약 5년간 싼값에 쓸 수 있다.

라이 위원장은 말했다. 정부와 사업주는 이주노동자가 기계인 줄 안다고. 이런 상황에 노조가 단결이 잘 안 돼서 아쉽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왜 단결이 안 되냐고 물으니 이주노동자가 워낙 장시간 일해서 노조 활동할 시간이 없다고 대답했다.

라이 위원장은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고용허가제를 철폐한 후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허가제로 바뀌면 제도의 주체가 사업주가 아닌 노동자가 된다. 사업장을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와 노동권이 보장될 길이 열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아직 노동허가제에 관한 언급이나 신호는 없다.

- 전태일 열사가 분신할 때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라고 외쳤는데 이 바람이 아직도 안 이뤄졌어요.
"전태일 열사가 살아있었으면 이주노동자가 전보다 더 많이 단결되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장시간 일해서 노조 활동할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처음부터 투쟁하면 안 된다고 교육도 받아요. 산업인력공단이나 대사관에서 투쟁하지 말라고 교육해요."
  
- 사업주도 노동 관련 교육을 받나요?
"이주노동자는 의무로 교육을 받는데 사업주는 의무가 아니에요. 전체 사업주의 6~7% 정도밖에 교육받지 않아요."

- 바뀌어야 할 게 너무 많네요. 노동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요.
"우리는 기계가 아닌데, 사람이고 노동자인데, 정부는 이렇게 생각을 안 해요. 정부가 제도를 바꿔야 해요. 이주노조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정책에 반영해야 해요."

[전태일 50주기 기획 - 내 노동을 헛되이 말라] 
① "전태일 살아있었으면 손배가압류 소장 받았을 것" http://omn.kr/1q51p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 시리즈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는 6월민주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태일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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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산책을 좋아합니다. 준이, 그리, 도비와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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