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의심없이 답장하다가, 아차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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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도 이런 개그가 없었다. 가족들도 모르게 혼자서만 조용히 수렁에 빠지는, 위태로운 순간에도 전혀 이상 징후를 알아채지 못하는 바보 역할을 하는 모양새였다. 혼자서만 너무 진지해서 허무하게 웃기는 상황에 남편과 아들, 딸은 왜 그랬냐며 밝게 웃었지만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렇게 다들 당하는구나 싶었다. 어떻게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 통할까 싶었는데, 내게도 아무런 의심 없이 통하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랐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르는 번호는 아예 받지도 않던 나였다. 전화를 안 받으면 문자로 용건이 다시 왔고 그때 통화하든 답장하든 하는 것이 낯선 번호를 대하는 나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딸의 말투와 똑같은 문자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다 휴대폰이 망가지게 돼서 불편한 것은 없는지, 당황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범죄의 도구로 사용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인 듯했다. 인터넷에는 각종 사례들과 문자의 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내가 속은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문자들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문자는 가능한데 전화는 안 된다는 사실도 수상한 것이었고, 폰이 고장 났으면 수리를 하든 새 폰으로 바꾸든 얼마든지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굳이 복잡하게 친구 추가니 톡으로 확인이니 하는 것도 수상하게 여겼어야 했다.
박사도 연구원도 유명 연예인도 당했다고 하는 말들이 하나도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는 마음은 앞으로는 경계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피해는 없었지만, 그날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다른 일들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문자가 왔던 시간과 보이스피싱 사실을 깨닫게 된 시간 사이에 나의 기억은 갇혀 있었다. 그 시간의 굴레에서 보이스피싱의 진행 과정을 아직도 곱씹고 있을 뿐이다.
나만 비껴가는 세상 일이 어디 있을까
벌써 몇 해 전부터 시작된, 낯선 전화는 받지 않던 것도 보이스피싱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전화를 걸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왔다며 계속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었다. 돈을 보내라고 했다며 화를 내는, 매일 같이 걸려오는 대여섯 통의 전화를 받으며 낯선 번호만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결국 전화번호를 바꾸고서야 그 상황은 끝이 났다. 이후로 조심한다고 했는데, 다시 방역이 뚫린 것 같아 다시 마음이 불안했다.
2018년 금융감독원의 보이스피싱 통계에 따르면 경기 지역에서의 피해액이 가장 크다고 한다. 통계로만 보면 위험 지역에 거주하는 셈이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주로 40대에서 50대라고 하니 대체로 나는 피해를 입기 쉬운 고위험군에 속한 셈이다. 물론 지역이나 세대가 다르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엔 특히 정부지원 대출이나 소상공인 지원자금 관련한 피해도 있다고 한다. 인간의 마음을 이용하는 범죄는 스마트한 문명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양상이다. 스마트폰이 필수인 세상에서 범죄는 더 스마트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스피싱을 당할 뻔하고 나서 범죄 관련해서 검색하다 보니 미리 알았으면 내가 당한 일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닥치기 전에는 세상의 모든 일은 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한다. 내게는 일어날 수 없는,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가끔 방송에서 출연자가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을 하는 것을 제법 듣는다. 나는 그 말을 싫어한다. 심지어 그 말을 편하게 하는 사람도 좋게 보아지지 않는다. 더구나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상황에 처하고 보니, 세상의 모든 일은 곧 나의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비껴가는 세상 일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싶다.
다른 이의 어려움에 적극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뉴스를 통해 가끔 접한다. 보이스피싱과 관련해서도 경찰관이나 은행원의 지혜로 범죄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사례도 있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도 많지만, 그 정도는 나도 기지를 발휘할 수 있겠다 싶은 일도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우리'라는 공동체의 일이다. 다른 이에게도 이런 일은 있어선 안 된다는 '우리'의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그래서 의인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어떤 의인의 도움을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스스로 조심해야 하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모르는 번호로 오는 통화는 받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딸을 사칭한 문자에는 대책 없이 속고 말았다. 걸려오는 낯선 전화에는 예민했는데, 이제는 문자도 의심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급한대로 가족끼리라도 상황에 따른 대응 매뉴얼이라도 만들어서 공부하고 공유해야 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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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폰이 고장났다는 딸의 문자, 믿으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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