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4일 락다운 현장
동물권리장전 한국
하지만, '법의 언어'로 보자면 이는 도살을 늦추고 결국엔 고기의 생산을 늦추는 '업무방해'였다.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이들은 기소됐고, 지난 8월 20일 1심 선고에서 시위에 참여한 활동가 등에게 벌금 300만 원이 내려졌다. 이번에 내가 참관한 재판은 항소심이었다. 변호인은 이번 재판에서 '누구나 불법시위의 목적을 공감할 것'이라며 선처를 요청했다.
"도살장에 진실이 있다"
마피아 게임을 통해서만 듣던 '최후의 변론'을 실제 법정에서 마주했다. 활동가 향기(활동명)는 학창 시절 내내 개근상을 놓치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하며 평범한 직장생활을 꿈꿨다고 말했다. 내 삶과 매우 닮아있다고 느꼈다. 향기는 졸업과 취업이 순조롭게 될 줄 알았는데 어쩌다 동물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동물권 활동을 벌이다 결국 범법자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변론이지만 고발이었다. 고기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도살장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숨어있고 그곳에 동물이 있다고 외쳤다. 동물이 어떻게 사육되고 학대되고 살해되고 강간당하는지 변론을 통해 읊기 시작했다. 진실을 알게 된 향기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이 현실을 알리기 위해 선을 넘었다고 고백했다. 향기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고 변론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검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고 서기는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법정에서 향기의 입을 통해 동물의 참담한 현실이 드러났다. 숨죽여 방청하던 시민들은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판사는 피고인과 방청석에 앉아있는 시민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케이지 속 털이 뽑힌 닭, 성장촉진제에 주저앉은 닭, 사산된 새끼 돼지, 스툴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돼지, 강간당하는 젖소, 전기봉에 감전되는 돼지, 이산화탄소 질식에 의해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죽어가는 돼지(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이산화탄소 질식 대신 질소 안락사를 요구하는 단체들도 있다. - 편집자주), 날카로운 칼이 목을 관통해 온 몸의 피를 쏟는 닭과 돼지. 향기의 변론을 듣는 내내 이 모든 장면들이 내 머리를 관통했고 그 자리에 있던 나도 눈물을 흘렸다. 눈물밖에 흘릴 수 없는 현실에 분노했고 한편으론 무력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동물을 학대한 이, 즉 동물학대 가해자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날은 도살장 업무방해로 세 명의 활동가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이들은 말할 수 없는 동물의 대변인이기도 했다.
"재판받을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도살장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곳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진실을 여기로 가지고 왔다."
- 최후의 변론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