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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에서 제정한 '개천절' 국경일로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 / 21회] 대종교는 1909년 1월 15일 중광을 선포하면서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해마다 행사를 거행해왔다

등록 2020.12.09 17:41수정 2020.12.0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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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20008년 개천절 사진
20008년 개천절 사진이홍로
 
나철은 국치 직후인 1910년 9월 27일 대종교의 교명(敎命)으로 종단의 '의식 구례'를 제정ㆍ발표하였다. 어느 종교나 다 있는 의식과 행사를 규정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제3장에 개천절에 관한 항목을 명시하면서 "개천절은 강세일(降世日)과 개국일(開國日)이 10월 3일이라 경일(慶日) 합칭함" (주석 16) 이라고 밝혔다. 

대종교는 1909년 1월 15일 중광을 선포하면서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해마다 행사를 거행해왔다. 이것을 '의식 구례'로 확정한 것이다. 한민족은 오래 전부터 10월을 상달(上月)이라고 불러 한해 농사를 추수하고 햇곡식으로 젯상을 차려 감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천행사를 행하였다. 3일의 '3'의 숫자를 길수(吉數)로 여겼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을 비롯하여 마니산의 제천단, 구월산의 삼성사, 평양의 숭령전 등에서 행하여진 제천행사는 국조 단군의 탄신을 축원하는 행사였다. 

나철은 대종교의 총본사를 만주로 옮긴 이후에도 이날이면 개천절 행사를 거행하였고, 1919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임정에서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제정했으며, 충칭으로 옮긴 임시정부에서도 대종교와 합동으로 이날 경축행사를 거행하였다. 

대종교 교인이었던 독립운동가 위당 정인보는 1935년 개천절의 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부여했다. 

삼위태백을 굽히어 보아 인간에 홍익을 도모할 수 있음을 헤아리시고, 태백산정 신단수 아래에 하강하셨다 하는 환웅천왕의 성스러운 자손이신 단군은 곧 상천(上天)의 부속(咐屬)을 몸받으신 고의(古義)라, 홍익인간이 단군의 심인(心印)인 동시에, 이른바 천부인 삼개(三個)라 함이 환인ㆍ환웅ㆍ단군 삼위의 일심(一心)이 한 가지 이에 있음이 인(印) 침 같다 함을 화전(化傳)함이러니, 그 심인(心印)이 있는 곳을 찾으려 할진대 홍익인간이 이것이요, 인간에 홍익을 도모하시니 만큼 두루요, 또 크되 삼위태백으로 그 베푸심에 근본을 삼으시니, 예로부터 전함이 비록 간소할지언정 고정교(古政敎)의 면모를 삼가 계고(稽考)함직하니. (주석 17)

 
지구를 들고 있는 거대한 황금 단군상 높이 21m의 거대한 국조 단군의 상이 단기 4341년 개천절을 맞아 세워졌다.
지구를 들고 있는 거대한 황금 단군상높이 21m의 거대한 국조 단군의 상이 단기 4341년 개천절을 맞아 세워졌다.전윤경
 
개천절은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10월 3일(양력)을 정식 국경일로 지정하고 그때까지 경축식전에서 부르던 「개천절의 노래」를 정인보가 새로 작사한 내용으로 바꾸었다.


개천절은 원래 음력 10월 3일이므로 해방 후까지는 그대로 지켜오다가 1949년 문교부가 사계의 전문가들로 위촉한 '개천절 음ㆍ양력 환용 심의회'의 심의결과, 음ㆍ양력 환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와 무엇보다 '10월 3일'이라는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에 따라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개천절가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백두산 높은터에 부자요 부부
 성인의 자취따라 하늘이 텄다
 이날이 시월상달에 초사흘이니
 이날이 시월상달에 초사흘이니.

 오래다 멀다해도 줄기는 하나
 다시핀 단목잎에 삼천리곱다
 잘받아 빛내오리다 맹서하노니
 잘받아 빛내오리다 맹서하노니.

나철이 1916년 구월산 봉심(奉審) 행사에 갔을 때 동행하고, 상하이 임시정부 임시사료편찬위원회 위원과 제5기 임시정부 의정원의원 등을 역임한 한글학자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두봉은 1922년 10월 임시정부의 개천절 경축식장에서 개천절에 대한 역사를 피력하였다.

오늘은 단군께서 우리나라를 처음 세우신 건국기념일이라.…독립을 선언한 지 올해까지 3년 동안 국경일로 지냅니다. 이제로부터 13년 전에 대종교 곧 단군이 세우신 종교가 부흥하게 됨으로부터 그 교중(敎中)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단군이 건국하신 후 단군조는 물론이고 그 뒤를 계승한 역대의 모든 나라들이 다 단군의 건국위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월일을 택하여 성대한 의식을 거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역대로 그 기념의 명칭과 의식과 그 월일의 차이는 불문하나, 단군을 건국시조라 하여 그를 불망함이 건국을 기념함으로 생각함은 역대의 공통된 정신으로 볼 수 있으며…교조로 신봉하여 기념함도 사실이었습니다. 

명칭으로 말하면 삼한의 천군제라던지 부여의 영고회ㆍ예의 무천회ㆍ기씨(箕氏)의 보본제ㆍ고구려의 동맹회ㆍ신라의 태백산사(太白山祠)ㆍ백제의 사중제(四仲祭)ㆍ발해의 단계축(壇戒祝)ㆍ요(遼)의 군수제(君樹祭)ㆍ금(金)의 장백산책(長白山柵)ㆍ고려의 삼성사제(三聖祠祭)ㆍ조선의 숭령전제(崇靈殿祭) 등이 이명동체의 기념이 올시다.

의식으로 말하면 삼한, 부여, 예, 고구려 등 모든 나라에서는 전국의 공동거행으로 삼한은 대표자를 선출하여 국읍(國邑)에 제(祭)하고 그 남아 세 나라는 민중이 회집영축(會集頒祝)하였으며, 기씨(箕氏)ㆍ신라ㆍ발해ㆍ요금(遼金)ㆍ고려ㆍ조선 등 모든 나라는 국군(國君)이 친제(親祭)하거나 혹 강향대제(降香代祭)하였습니다. (주석 18)


주석
16> 『대종교중광60년사』, 160쪽.
17> 정인보, 「단군개천과 상월」, 『담원 정인보전집(2)』, 362~363쪽, 연세대출판부, 1983.  
18> 김두봉, 「개천절 역(歷)」, 『독립신문』, 1922년 11월 11일.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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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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