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차를 빌려 모텔을 전전했다. 시간이 지나 남자는 B에게도 성매매 강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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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폭력이 동반된 사례도 많지만(관련기사 :
맨발로 미친듯이 택시에 올랐다... 채팅앱 뒤편서 벌어지는 일), 심리적으로 피해자를 지배해 '성매매'란 이름의 성착취를 이어가는 사례도 많다. 피해자 스스로 행동하게끔 하거나, 나중에 강한 자책감에 시달리게 한다는 점에서 더 악랄한 방식이다.
위 사례처럼 그런 피해자가 장애인뿐일까? 그렇지 않다.
17세 여성 B는 집을 나왔다. 부모의 이혼과 병환으로 집엔 자신과 동생 둘 뿐이었다. 그러다 동생과 크게 다툰 후 가출을 결심했다.
청소년 쉼터에 머물던 중 동생의 연락을 받았다. 가출한 동생이 "지금 남자친구(성인)와 함께 지내고 있다"며 "언니도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그 남자는 "방도 구해주고 동생과 편하게 살도록 해주겠다"고 말했다. '동생 남자친구니까'라는 생각에 B는 의심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거짓이었다. 남자는 차를 빌려 모텔을 전전했다. 한동안 B는 '돈이 어디서나지'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남자는 함께 다니던 다른 여자 아이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남자는 B에게도 강요를 이어갔다.
남자는 동생과 함께 있을 땐 친절했다. 하지만 동생이 없으면 "우리 돈 없는데 어쩌지? 밥 안 먹을 거야?"라는 말을 자주했다. 급기야 "그럼 네 동생 성매매 시킬까?"라는 말까지 했다. '그래, 동생보단 내가 낫겠지.' B가 더 버틸 수 없게 되자, 남자는 채팅 어플로 하루에 2~3회 '일'을 잡았다.
B는 '내가 도망치면 동생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 그래도 저 사람이 동생에겐 잘 해주니까. 지금 잘 데라도 있고 밥은 먹을 수 있으니까.' B가 스스로를 위로할 때 하는 생각이었다. '도망쳐야지'라는 마음을 먹기까지 그렇게 1년의 시간이 걸렸다.
B가 떠난 후 남자는 동생에게도 마수를 뻗쳤다. 그게 '매매'가 아니라 '착취'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동생의 배신감은 더 컸다.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였다.
지난 12월 B를 만났다. B는 힘주어 이야기했다.
"경찰 조사에서 '왜 도망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경찰이 그렇게 물을 줄 몰랐어요. 제가 도망치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지 않는 게 아닌데. 또 사람들은 함부로 이야기해요. 쉽게 돈 번다, 발랑 까졌다... 본인이 안 겪어 봐서 잘 모르는 거겠죠?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B는 '간호사'라는 꿈을 꾸고 있다.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니며 이론 수업을 다 들었고, 지금은 실습을 다니고 있다. 쉼터에 머물며 검정고시를 통과한 B는 간호대 진학을 준비 중이다. B는 인터뷰 말미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어른들이 좀 깨끗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짧게 답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미성년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주고 친밀감을 형성한 뒤 성매매를 강요하고 성관계를 가졌다면 그건 성착취, 위계에 의한 성폭력으로 봐야 한다"라며 "그걸 애정이나 친밀함의 관계로 이해한다면 큰 오류다. 아직 이러한 인식이 너무도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폭행·협박이 동반된 경우와 달리 이른바 '그루밍'에 의한 성착취의 경우 훨씬 더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라며 "하지만 우리 수사기관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관련 판결문 219개를 검토해 피해 사례와 형량을 정리했다(2020년 1월~10월 선고, '대법원 판결문 검색 서비스' 통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중 성매수·강요행위·알선영업행위 등 키워드 검색). 이어지는
<③-2 그게 어떻게 '약속'인가, 판사가 "비열하다" 말한 이유>에는 위 사례들처럼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해 성착취를 이어간 사례 중 일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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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이 시킨 성매매... "왜 안 도망쳐?" 그 질문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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