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개선문 앞에서(2005. 7. 21. 왼쪽 남정현 선생, 오른쪽 기자.)
박도
나의 멘토
문청시절 나는 남정현 선생의 작품을 탐독하였고, 선생은 장차 닮고 싶은 작가상이었다. 이런저런 모임에서 대여섯 차례 만난 뵌 적이 있었지만 두 차례 깊은 만남만 들려드린다.
1997년인가 1998년 설을 앞두고 민족문학작가회(현, 한국작가회의 전신)에서 당시 공주 교도소에 복역 중인 황석영 작가 면회 가는 행사에 동참했다. 30여 분이 전세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침 남정현 선생 옆자리에 앉게 되어 오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실 나는 그 이전까지 남정현 선생을 대단히 날카롭고, 강직한 투사로 봤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나누자 아주 부드러운 분이었다. 그분의 작품 <분지>를 읽을 때는 강대국 앞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는 그 투지에 소름이 끼쳤다. 그런 선입관과는 달리 체구도 자그만 하시고, 인상도 여느 동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마음씨 좋은 초로의 예사 할아버지였다.
그 즈음에는 도봉구 쌍문동에서 따님과 둘이서 지낸다는데, 따님이 직장을 나가기에 진지는 손수 차려먹을 때가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