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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을 하고 노팬티가 되었다

화장품 끊기, 노팬티 취침... 채식과 함께 해본 소소한 시도들, 일상이 달라졌다

등록 2020.12.23 11:14수정 2020.12.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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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을 지향하게 된 후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 pixabay

 
얼마 전, 일 때문에 만난 분들과 계획에 없던 식사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 비건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혹시나 곤란한 상황이 생길까 마음을 졸였는데, 멀리서도 찾아온다는 맛집을 마다하고 소박한 한식당을 택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비빔밥을 주문하며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고 계란 후라이는 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마도 멸치육수가 들어간 국이 따라 나올 듯해 그 또한 주실 필요 없다는 말씀도 잊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을 본, 그날 처음 만난 분의 한 마디. 

"편식이 심하시구나. 그런 줄 알았으면 다른 데로 갈 걸 그랬어요."

편식이라. 편견, 편애에 들어가는 그 '편(偏)'자가 아니던가. 왠지 모르게 뒷맛이 쓰게 느껴지는 것은 그저 내 기분 탓일까. 그가 주문한 것은 제육덮밥. 동물의 죽음에 마음이 쓰여서 더이상 먹지 않기로 했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원하는 대로 먹겠다'는 결심이 불러온 변화 

비건을 지향하게 된 후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언젠가는 결벽증이 아니냐는 말까지 들어야 했으니. 채식을 결심하기 전의 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고, 오죽하면 그게 뭐라고 자부심까지 가졌다는 말을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그저 웃으며 흘려 넘긴다.


예전의 나라면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놨을 것이다. 상대방의 평가에 민감하고 행여 부정적인 낌새라도 보일라치면 최선을 다해 그것을 돌려놓기 위해 노력했던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깜냥으로 타인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아서 나는 자주 실패했고 그런 스스로에게 번번이 실망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전보다 많이 단순해졌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반응은 이렇게 생각하고 흘려보낸다.

"그런가 보다." 

채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누군가 나를 까다롭다고 규정해도, 반대로 시원시원 성격 좋다고 말해도, 말이 잘 통한다고, 혹은 안 통한다고 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한다. 부정적인 평은 물론, 긍정적인 평 앞에서도 행여 그것이 깨지진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내가 조금씩 덤덤해지고 있다.

어차피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난 고기를 먹지 않을 거니까.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간에, 난 내 갈 길만 가면 된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맞출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피상적인 경구가 아닌, 진짜 실체로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게 채식 덕분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변화는 한 방의 마법 같은 일보다는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본다. 하지만 채식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먹겠다는 그 간단한 결심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나를 데려가고 있다. 

자유로운 쪽으로 한뼘 더  

채식에 대해 글을 쓰고 있지만 요즘은 내 자신이 채식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 처음 몇 달간은 온통 먹을 궁리뿐이었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점심과 저녁은 물론, 그다음 날 메뉴를 고민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 애쓰지 않아도 나는 비건을 지향한다. 

먹거리를 궁리하는 피로가 줄어든 대신 다른 것들을 시도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시도라는 것이 대수롭진 않고 무척 소소한 것들인데 그중 만족도가 높은 몇 가지를 소개해 보고 싶다. 첫 번째는 바로 노팬티 취침. 19금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 

남녀를 불문하고 통풍이 잘되는 속옷이 몸에는 더 좋다는 것은 몇 번인가 들어온 바 있다. 하지만 듣기만 했을 뿐 여태껏 시도해 본 바가 없다. 누가 딱히 그러지 말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래선 안 될 것 같았다고 해야 하나. 

어느 날 갑자기 호기심이 도진 나는 품이 넉넉한 면 소재의 파자마를 입되 그 안에 속옷을 착용하지 않고 잠을 청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 시원함이라니. 앉으나 서나, 누우나, 깨어 있는 한 다소곳이 딱 붙이던 양 무릎도 불편하지 않은 정도까지 벌려본다. 시원함을 넘어 청량함까지 느껴진다면 과장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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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호기심이 도진 나는 속옷을 착용하지 않고 잠을 청했다. ⓒ pixabay

 
또 한 가지 시도는 화장품을 끊었다는 것이다. 메이크업 제품만이 아닌, 스킨과 로션 등 기초 화장품까지 모두 중단한 지 꼭 1년째다. 미용용품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것이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득될 것이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지만, 고백하건대 나보다 앞서 화장품을 끊은 지인 한 분이 건강한 피부를 되찾은 것을 본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유감스럽게도 내 피부는 딱히 좋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빠지지도 않았다. 그저 현상 유지 중. 이것만 해도 그간 화장품에 투자했던 시간과 돈이 아깝기만 하다. 바르고 또 닦아 내느라 쓴 시간은 물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 그러면서도 저렴한 것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쇼핑몰을 전전했던가.

이렇게 나는 소소한 변화들을 시도하며 일상을 즐기고 있다. 종종 실패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유쾌하다. 내 몸과 마음에 대해 점점 더 정확하게 알아가는 것이므로. 

채식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이 바뀌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익숙한 나다. 다만 내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실천하기 시작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더 잘 구분하게 되었다는 것뿐. 

그러니 이제 와 뒤끝을 부려 보자면 나는 '편식'을 하는 것이 아닌, '편(偏)'이라는 글자와 조금 더 멀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내 생각과 무관하게 굳이 편식이라는 명찰을 내게 달아주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면, 웃으며 생각할 수밖에. 

"그런가 보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지금의 내가 더 좋다. 그러니 다음엔 무슨 시도를 해볼까나.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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