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은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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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을 하는 주민지원센터에는 다양한 민원인들이 찾아온다. 민원실 한쪽에는 컴퓨터 두 대가 놓여 있다. 민원인들의 급한 서류 작업을 위해 준비된 것이지만 대부분은 비어 있다. 그런데 이곳 컴퓨터를 고정적으로 이용하는 고객이 있다.
적어도 70은 훌쩍 넘으신 어르신 세 분이다. 그분들은 거의 매일 시간대를 달리해서 찾아오고 두세 시간 정도를 컴퓨터 앞에 앉아 기사를 검색하거나 한글 문서를 만들거나 편집하고는 돌아가신다. 물론 돋보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시고, 두 손가락만 이용하는 독수리 타법이지만.
그분들을 생경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인 듯 앉고 컴퓨터를 사용하시다 일을 마치면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신다. 그분들을 보며 내가 느끼는 것은 70이 넘은 어르신도 매일 인터넷의 정보가 필요하고 문서 작업이 필요한 세상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인터넷의 세상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간다. 민원서류 무인 발급기의 사용도 어려워하시는 분이 대부분이다. 마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다니엘처럼. 주인공 다니엘이 실업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겪는 과정은 미지의 세계로의 접근이다.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인터넷 신청을 마친 다니엘의 상황은 내가 처음으로 키오스크 앞에서 느꼈던 혼돈과 같은 것이었고 충분히 공감이 된 장면이었다.
온라인 세상 앞에서 주저하는 또 다른 다니엘은 없을까. 특히 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환경은 변화의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빠르다. 필요를 느끼는 대상도 사용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전 국민에게 사용을 강요하는 것처럼 시스템이 재구조화되는 것 같다. 그런데 배움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니 나이 든 사람에게 배움은 더 두렵고 익숙하게 활용하는 것은 점점 어렵고 멀게만 느껴진다.
미디어 리터러시 강의를 들으며, 동화책을 가지고 안내하는 것처럼 쉽고 천천히 접근하도록 이끄는 기회가 어른들에게도 주어지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어린 학생들에게 접근하는 것처럼 배움을 얻을 수 있다면 좌절하지도 실의에 빠질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느리지만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80대 어르신은, 뒤늦게 한글 공부를 하고 요리책을 내셨다고 했다. 이제는 세상을 훨훨 난다고 말씀하셨다. 미디어 세상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글 자모의 획을 처음 긋는 것처럼 첫걸음을 잘 안내한다면, 어르신들도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 세상은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시작은 관심과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다. 어른들에게도 동화책 같은 쉬운 접근이, 그런 기획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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