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어가는 쥐들의 출몰로 시작된 오랑시의 페스트
Pixabay
곧 사라지리라 믿었던 코로나가 1년이 지나도록 기승을 부리며 전례 없던 일상을 가져왔다. 마스크 착용은 어디서든 필수가 되어버렸고, 마음 편히 외식도, 여행은 고사하고 동네 카페도, 미용실도 안 다닌 지 오래다. 간간이 배달음식과 동네 마트 위주로 도보권 내에서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조심스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전염병으로 갑작스럽게 변한 이런 우리의 일상을 일찌감치 내다본 소설이 있다. 바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이다.
신기하게도, 페스트의 광풍에 습격당한 오랑시 시민들의 모습은 코로나를 겪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차가 끊기고, 연일 확진자와 사망자의 통계 수치를 주목하고, 격리와 방역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단절감으로 고통받는 귀양살이의 심정으로 일상을 버텨야 했던 모습들이 말이다.
페스트를 겪는 다양한 오랑시의 시민들과 코로나를 겪는 요즘 우리들의 면면을 견주다 보면, 70여 년 전 작가가 페스트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분명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패배를 경험해도 본분을 잃지 않는 이들
<페스트>에서 단연 첫 번째로 눈에 띄는 인물은 의사 '리외'이다. 그는 손쓸 틈도 없이 발병 2, 3일 만에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며 도지사에게 시급한 격리와 방역 조치를 이끌어내고, 부족한 병상 확보를 위해 유치원과 호텔 등을 보조 병원으로 만들어 관리한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밤늦게까지 병원 밖의 환자들에게까지 왕진을 다니며 시종일관 극한에 다다르는 성실성으로 자신의 직분에 충실히 임한다. 그의 일상은 환자들의 죽음을 매일같이 겪을 수밖에 없는 끝없는 패배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는 무릎 꿇지 않고 계속해서 싸워나가는 것만이 필연적 진리라고 믿는다. 왜 그렇게 사람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냐고 묻는 친구에게 리외는 답한다.
"... 이건 도의의 문제입니다. 웃기게 보일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도의뿐입니다.... (중략)... 내 경우, 그것은 내 본분을 다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영웅주의에 도취된 일시적 호기도 아니요, 승진을 노린 명예욕의 발로도 아니요, 보수는 더더욱 아닌 그저 인간된 자로서의 도의를 말하는 리외라는 인물이 범상치 않다. 도의를 느끼는 인간이라면 직분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그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만이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그의 일갈은 당연히 오늘날 전국의 코로나 전담 병원과 선별 진료소에서 매일 확진 환자를 마주하고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계신 의사분들과 간호사분들을 떠올리게 한다.
방호복 안에서 한여름 불볕더위에 피부가 짓물러가면서도, 한겨울 한파에 손이 얼어가면서도, 화장실 한 번 마음 편히 가지 못하고, 물 한 모금, 식사 한번 제대로 못 드시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헌신해 주시는 의료진들이야말로 진정한 '리외'의 현신이 아닌가 싶다.
혼신의 힘을 다해주시는 의료진분들이 그곳에 계시기에 지금껏 전방위적 확산을 피해 왔을 것이며, 혹시 확진되었다 하더라도 회복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리라.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