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토해내는 사람들눈물나는 경험이지요.
남희한
먹고 토하면 속이 쓰리다. 그래서 적당히 먹어야 함에도 그게 참 쉽지 않다. 먹을 때만큼은 너무 행복하다. 계속 먹고 싶다. 맛있음의 행복감과 배부름의 통증, 그 경계 어디쯤에서야 타협을 보게 된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식시장은 배부름이 없는 곳이다. 먹는 만큼 배가 커진다. 아니 먹은 만큼 더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배가 부른 듯싶다가도 이내 허기가 지는 곳. 주식시장은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욕심내서 먹다 보니 으레 체하는 경우가 생긴다. 욕심으로 배는 커졌는데 소화력은 대단치 않다 보니 그렇다. 그 체함은 생각보다 고약해서 먹은 걸 다 토해내고도 내장까지 쏟아낼 만큼 구역질을 하게 했는데, 더 괴로웠던 것은 고통스런 웩웩거림 뒤에 "이제 살겠다!"가 아닌 "이제 어쩌지?"라는 마음의 고통이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플라톤은 욕구를 누르고 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용기라고 했는데, 이에 빗대 보면 내가 용기라 착각했던 것은 '이성적 행동'이 아닌 욕구를 100% 반영한 '이상적 희망'이었다. 그러고도 대단한 결단을 내린 것 마냥 가짜 용기를 남발했다.
용기보다 쉬운 겁먹기
이성이라 생각했던 것이 나만의 행복 시나리오라는 걸 알고부터, 나는 이성적으로 겁부터 먹고 있다. 수차례 힘겹게 토하다 보니 겁이 절로 난 것도 있지만, 실패를 가정한 구체적인 물질적 정신적 고통이 날뛰는 욕심에 목줄을 채워줬기 때문이다. 호되게 당한 탓인지, 생각만으로도 당시의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나 급해지고 과해지는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트레이더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사고 종종 판다. 1/5씩 나눠 담고 1/5씩 덜어낸다. 올라도 사거나 팔고, 내려도 사거나 판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골라낸 종목을 0으로 만들진 않는다. 그게 대체적으로 마음이 편했다. 예전처럼 스펙터클하진 않지만, 가끔 마음이 쫄깃해지다가도 편해지는 것을 보면, 나름 이성과 욕심의 경계 어디쯤엔 머물고 있는 듯하다.
내게 있어 이것의 좋은 점은 마음의 여유다. 더 올라도 아직 가지고 있다는 위안이고 내려도 더 채우거나 덜어내면 된다는 안도감이다. 일련의 계획을 가지지만 그 계획만으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많이 두들겨 맞아서인지 너덜거리는 유연함이 생겼고 한 종목을 오래 접하다 보니 다소간의 확신과 믿음이 생겨서다. 한 사람을 오래 두고 보면 건강상태나 생활습관 정도는 알게 되는 것처럼, 매운 걸 먹고 탈이 난 것에 큰일 났다며 호들갑 떨거나 겉모습에 속는 일이 줄었다.
'적당히'라는 세상 어려운 말
음식 솜씨가 좋은 사람에게 조리법을 물으면 대다수가 '적당히'라는 미지의 가늠자를 가지고 있다. 적당히 넣고 적당히 버무리고 적당히 익히면 된다고. 세상 어려운 그 적당함을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 늘 대답은 똑같다.
"하다 보면 알게 돼..."
역시 어렵다. 그래도 하다 보면 안다고 하니 꾸준히 해보는 수밖에. 부디 애쓰지 않아도 '적당히'를 가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시도가 극단적이지 않길 간곡히 희망한다. 뉴턴은 주식으로 전 재산을 날리며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다"는 명언이라도 남겼지만, 내 생애 그런 행운(?)을 기대하기는 무리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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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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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도 전 재산 날린 주식, 나는 다를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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