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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의 이무기가 용꿈을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 / 24회] 육신은 유교 쪽이고, 정신은 반유학에 기울었던, 고뇌의 삶이었다

등록 2021.03.25 18:03수정 2021.03.2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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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생가의 사랑채...사랑채에는 교산 허균의 영정도 모셔놓았다. 총명하고 진취적이었으나 이단아로 낙인찍혀 결국 역적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허균. 소설 홍길동전에서 그의 개혁적인 사고의 한 편린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생전에, 불행하게 죽은 누이의 글을 모아 중국과 일본에서 난설헌시집이 발간되게 했으며 난설헌의 시가 칭송을 받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 김숙귀

 
중세의 봉건적 계급사회에서 허균과 같은 자유분방하고 울결한 성격으로 체제에 순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쪽 발은 체제 쪽에 딛고, 다른 쪽은 방외적 지식인들과 어울리는 이중성을 보였다고 할까. 달리 표현하면 육신은 유교 쪽이고, 정신은 반유학에 기울었던, 고뇌의 삶이었다.

한껏 기대하고 부안으로 내려왔는데 막상 주인공은 없었다. 소개하는 시가 1610년의 작품으로 보아 그가 도착하기 전에 매창은 세상과 작별했던 것 같다. 「계랑의 죽음을 슬퍼하며」란 추모시다. 

      계랑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맑은 노래는 머문 구름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무리를 두고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비취색 치마엔 향내가 아직 남아 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숭아가 열릴 때쯤이면
그 누구가 설도의 무덤 곁을 지나 주려나. (주석 4)

 

<홍길동전> 표지. ⓒ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사우재에 틀어박힌 허균은 도연명ㆍ이백ㆍ소동파의 초상화를 바라보다 불현듯 자기만 남겨 놓고 떠나간 고인들을 생각하다가 이정에게서 멈췄다. 「화가 이정의 죽음을 슬퍼하며」란 산문을 지었다. 이정의 모습에서 허균 자신의 기시감이 스친다. 글의 뒷 부분이다.

일찍이 권세 있는 정승이 그를 불러다 그림을 그리게 하고는, 흰 비단을 마련해 주고 술까지 잘 대접하였다. 정은 일부러 취한 척하고 누웠다가 한참 만에 일어나 그림 한 폭을 그렸다. 솟을대문으로 두 마리의 소 가짐을 가득 싣고, 두 사람이 물고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붓을 집어던지고 달아나버렸다. 

정승이 화가 나서 그를 죽이려 하자, 그는 도망쳐서 평양에 이르렀다. 그곳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다가, 끝내 거기서 죽고 말았다. 임시로 선연동(嬋姸洞:기생들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나도 세상과는 거리가 멀고 행동에 절제가 없는 것이 그와 마찬가지여서, 나이와 벼슬을 따지지 않고(그를) 가장 깊이 사랑했었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섰으니, 아아, 애통하여라. (주석 5)



아무리 호걸풍에 기걸찬 성품이로서니 어찌 낯선 곳의 귀양살이가 외롭고 서럽지 않겠는가. 정인은 가고 없고 지인ㆍ혈육도 하나 둘 사라졌다. 새 군주가 들어선 조정의 난정은 날로 심해진다는 소식도 들렸다.

            유배지에서

 저물녘에 산비 개니 꾀꼬리 소리 부드럽고
 시냇가에 구름 걷히니 대숲 그늘 서늘하네. 
 호숫가 정자에서 어느덧 반나절 꿈꾸노라니 
 내 몸이 타향에 묶인 줄 미처 몰랐네.

 한 굽이 경호는 꿈에 자주 드는데
 봉래도에서 신선 만날 기약 아홉 해나 저버렸네. 
 남쪽 땅 백발의 나그네라 그 누가 가련히 여기나 
 나는 우주 안의 자유로운 몸 아닌가. 

 새소리 바람에 실려 우거진 대숲 울리고
 복사꽃은 비 온 뒤 저녁 호수에 가득하네.
 고향으로 이 몸 돌아가라 허락한다면
 가을날 고향 가는 길 주저하지 않으리. (주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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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 전시된 홍길동전 ⓒ 김종길

 
허균이 여섯 번의 파직과 세 번의 유배를 당하면서 분노하고 시름에 빠져 시문이나 읊조리고 있었다면, 흔하디 흔한 저항문인의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쉽게 좌절하지 않았고 그리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당당함을 잃지도 않았다.

 예절의 가르침이 어찌 자유를 얽매리오
 성공과 실패는 다만 천성에만 맡기노라
 그대들은 그대들의  법을 지켜라
 나는 나름대로 내 삶을 이루겠노라.

 벗들이 와서 위로하고
 처자식이 불평한다.
 나는 기쁘다 뜻을 얻었노라
 시를 써서 이백 두보와 이름을 함께하리. (주석 7)


'허 이무기'는 유배지에서 '용 꿈'을 꾸기 시작했다. 조선(한국) 문학사에 이정표가 되는 소설 홍길동전이 잉태하게 된 것이다. 


주석
4> 앞의 책, 129쪽.
5> 허경진, 『홍길동전ㆍ허균 산문집』, 306쪽.
6> 허경진, 『교산 허균 산문집』, 77쪽.
7> 연암고전연구회 엮음, 「진보 교산 허균」, 『나의 길을 가련다』, 257쪽, 2013.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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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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