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의자를 버리기에는 지구가 너무 아깝다. 의자는 오래됐지만 너절하진 않으니까.
최다혜
우리는 왜 새 의자를 들이지 못 했을까? 이유는 하나였다. 뻔하다. 돈. 결국 돈 문제였다. 과거의 총각 남편에게도, 막 살림을 시작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에게도, 십 만 원 넘는 의자를 쉽게 바꿀 만한 돈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돈을 써야 할 데는 많고 의자에게 쓸 돈은 없었다. 의자는 오래되긴 했지만 너절하지 않아서 교체대상에서 늘 후순위로 밀려났다.
육아휴직으로 내 수입이 뚝 끊겼으니 쓰는 돈도 줄여야 했다. 오래됐지만 건재한 의자를 바꾸지 않아야, 가정 경제가 건전했다. 의자뿐이랴. 샤워 퍼프도 7년 동안 써 봤다. 10년 된 낡은 재킷, 7년 된 유선 청소기는 물론 빨래 건조대 발목이 부러져도 테이프를 감아 썼다.
왜 이렇게 궁상맞게 사냐고 물으면, 돈 덜 써야 고상하게 산다고 답했다. 절약해야 저축도 하고 외벌이로도 육아에 전념할 수 있다고. 최소한의 소비로 삶을 안정감 있게 지켜내고 있다고. 절약은 옳았다.
문제는 복직 이후였다. 절약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었다. 맞벌이가 되었으니 수입은 두 배다. 아주 신나는 일! 그런데 말이다. 신이 나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철벽녀가 돼 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철벽 말고, 쇼핑 센터와 내 지갑 사이의 철벽이다.
아무리 호감 가는 물건이 눈을 스쳐도 웬만해서 반응하지 않고 철벽을 친 듯 선을 긋는다. 퇴근 후에 배달 음식 시켜 먹기도 꺼려지고, 빨래 너는 시간이 아깝지만 건조기를 살 수도 없었다. 사고 싶지만 꾸욱 참는 게 아니라,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물론 의자도 바꾸지 않았다. 요즘은 지갑 여는 게 영 어렵다. 왜 이러지?
코로나, 기후위기, 미세먼지 때문에
정체는 가까이에 있었다. 코로나. 2020년 맞벌이를 시작하자마자, 기가 막히게도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 두 아이를 돌보기 위해 4년이나 일을 못 했기에, 설렘을 잔뜩 안고 출근을 했다. 그러나 나의 직장은 적막하기만 했다. 복도는 쥐죽은 듯 조용했고 모두가 충격에 빠져 혼란스러웠다. 마라톤 회의만 거듭했다. 나는 교사다.
2020년 3월, 복직했으나 학교에 아이들이 없었다. 2021년 3월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학교에 매일 오지 못 한다. 오더라도 마스크를 써야만 하고, 리코더를 불지 못 하며, 친구와 손잡고 등교할 수 없다.
"원격 수업이 좋아, 대면 수업이 좋아?"
대면 수업의 압도적 승리. 원격 수업이 좋다는 아이는 셋, 대면 수업이 좋다는 아이는 스무 명이었다. '원격 수업 때 학교도 안 가고 놀아서 좋겠다'는 편견이 깨져 버렸다. 코로나 시대에는 아이들이 학교를 싫어한다는 것도 해묵은 오해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는 게 낫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