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언스플래쉬
이 집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비싼 물건은 여전히 얼음정수기와 빔프로젝터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가장 만족한 것도 얼음정수기와 빔프로젝터였다. 서로가 산 물건을 두고 "그래, 잘 샀다!"면서 등을 두드려주었다.
결과적으로 얼음정수기는 좋은 선택이었다. 더이상 물을 마시고 난 뒤 플라스틱 페트병을 내버릴 일도 없었다. 우리는 플라스틱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는 갓 내린 얼음을 포함해 다양한 음료를 대접할 수 있었다.
나는 주로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동거인은 차가운 물을 마시는데 따로 페트병을 둘 필요도 없이 정수기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니 너무나 편리했다.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정수기 요금에 이 모든 것들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니 결코 그 금액이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빔프로젝터는 환희 그 자체였다. 나는 매일밤마다 퇴근하고 넷플릭스와 왓챠를 비롯한 각종 OTT 서비스를 켜고 잠들 때까지 그 안에서 살고 있다. 진득하게 보는 영화가 지겨워질 때면 몇십분짜리 짧은 영상 콘텐츠를 보기도 한다. 영화나 자체 콘텐츠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 예능과 드라마까지 그야말로 모든 영상 콘텐츠를 집대성해놓은 이 무시무시한 플랫폼의 장악력에 놀라곤 한다.
잠시 코로나19로 인해 9시 이후로 영화관이 문을 닫아 심야영화를 보러가지 못할 때도 빔프로젝터는 좋은 선택이었다. 나 같은 직장인에게 9시 이전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빔프로젝터에 접속해 있는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났다.
심지어 SNS에서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 서비스 관련 계정을 팔로우해 넷플릭스에서 만드는 스타들의 키워드인터뷰나 상영 예정작 소식을 접한다. OTT 서비스 '콘텐츠 종료 예정작'만을 따로 소개해주는 SNS 계정을 팔로우해서 해당 영상 콘텐츠가 종료되기 전에 놓치지 않고 꼬박꼬박 보는 건 물론이다.
OTT서비스 아이디를 가족끼리 공유하면서부터 내 일상생활 속에 얼마나 깊숙이 넷플릭스가 들어왔는지를 대번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요새 종종 전화를 거는 내게 "(OTT서비스에) 볼 거 있으면 좀 추천해줘"라고 말을 건다. 나는 얼마 전에 내가 봤던 좋은 영상 콘텐츠를 엄마에게 소개해주고 엄마도 얼마 전에 봤던 영화를 내게 소개해주느라 바쁘다. 집안일로 인해 시간이 없어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자주 놓쳤던 엄마도 요새 부쩍 영화 소비량이 늘었다.
복잡한 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