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의 ‘장래 가구 추계: 2015~2045년’정책과 제도는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이른바 ‘정상가족’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하나의 가족 기준을 고집하고 있다. (참고: 박주연 2019-11-01 혼인.혈연 아닌 '사회적 가족'의 파트너십 인정하라)
통계청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한 청원이 1000건 넘는 동의를 얻었다. KBS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발적 비혼모인 사유리의 아들 키우는 모습을 방영하는 것이 공영방송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이러한 '정상가족'의 신화는, 남녀 부모와 아이로 구성되지 않은 가족은 '결핍'의 상태이고 어렵고 불행한 생활을 한다는 전제를 내포한다.
정말 정상가족 안의 가족 구성원들은 더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 가족 구성원들은 대체로 불행할까? 부모님의 이혼보다 정상가족 단위를 유지하며 지속되는 다툼이 더 불행했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결코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가족구성권연구소 김순남 대표의 말을 빌리면, 모든 관계에는 위기가 있을 수 있고 모든 삶에는 위기가 있는데 지금까지 국가는 '특정 가족 형태가 위기다. 저들만 위기를 경험하고 있고 나머지는 괜찮다'고 말해왔다.
국가는 재생산의 단위로서 집단화된 가족의 형태와 안정된 시민권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국가 경영의 효율성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국가가 정한 '가족의 정상성'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 자연적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건강 문제 등 개인의 사정으로 결혼과 출산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다양한 가족'에 대한 보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족에서 벗어나는 무연고를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는 가족을 단위나 형식이 아닌, 상호의존과 생활돌봄의 실천적 기능체로서 인식해야 한다.
2005년 호주제와 동성동본 금혼제도가 폐지되기까지 기존 제도로 인해 부당한 불편을 겪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무마되었으나, 폐지 이후에는 그 같은 법 아래에 살았던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로 느껴진다. 수많은 개인이 각자의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제도적으로 이를 보완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길이라 믿어온 하나의 틀이 정말로 '유일한' 틀인가를 되짚어보아야 한다.
출생률이 걱정된다고? 맞다. 2020년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0.98명이다. 프랑스에서 '팍스(PACS)'의 도입이 오히려 출생률을 반등시킨 것처럼, 가족에 대한 개념을 넓혀 가는 것이 국가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출생률이 더 떨어질 곳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하지 못할 실험은 없다는 황두영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생활동반자법 입법에 앞서, 먼저 도시 단위에서 기존 공적 제도의 미비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적·시범적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우선할 일은 '대안적 파트너십'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거 복지와 생활 지원 등의 자격 증명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도록 추가 조항을 제정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청약당첨을 위한 가짜 파트너십 등 법적 보호를 받기 위해 인원수만 맞추는 식의 악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책도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가 가족이랑 같아? 늙어서까지 옆에 있겠어?"라는 시선에 대해 나는 "그럼 그게 가능하다면, 가족으로 존중할 수 있나요?"라고 반문하려 한다. 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지금, 나는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존중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확대하는 새로운 시장을 원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버거운 시대에, 개인들의 돌봄과 연대를 제도적으로 돕는 정책과 그런 시정에 대한 상상력을 가진 시장이 필요하다. 나라를 위해 개인이 존재하지 않고 제도를 위해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통념이 아닌 현실에 기반한 점진적 시도들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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