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한
주춤거리는 사이, 몇 배가 올랐다는 소문과 앞으로 얼마간 더 오를 거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 진작 했어야 했나?' 하루에도 열댓 번은 했던 생각이다. 그럼에도 귀 얇고 자유 의지가 약한 나란 인간이 이런 대세를 따라가지 않은 건, 강력했던 몇 번의 충격으로 '와~ 이거. 내가 하면 진짜 인생 망치겠는 걸...' 하는 방어 본능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새벽에 큰일 났다고 깨우더라고"
100만 원으로 1000만 원을 벌었다는 코인 투자자. 같은 팀의 형님이었다. 코인의 등락을 보다 '이건 되겠다'는 판단으로 모아 두었던 용돈을 과감하게 질렀다는 그. 엄청난 수익률도 대단하지만, 두세 배씩 오른 상황에서도 팔지 않고 10배의 수익까지 참은 그 진득함이 정말 대단했다.
그 소식이 퍼지며 여기저기서 조언을 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렇게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신기해했고 자신들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퍼져나갔다. 매일같이 오르는 코인. 그 형님은 코인 투자 새내기들에겐 밝은 등불과도 같았다.
나 역시 그의 주변을 기웃거리며 정보를 얻었다. 참으로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들. 귓가가 따스해지며 팔랑거리기 시작했다. 10배가 올랐지만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에 이런저런 뉴스를 찾아보며 시기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들은 일화에 박장대소와 함께 현타가 찾아왔다.
"한밤중에 와이프가 갑자기 흔들어 깨우는 기라. 큰일 났다 길래, 내는 뭐 불이라도 난 줄 알았더만, 코인이 10%나 떨어졌다고 우짜냐고 묻는다 아이가. 내 당황스러워가꼬... 잘 달래가 재우느라 애뭇다.."
밝은 등불 아래 드리워진 그늘이 보였다. 그렇다. 코인 시장은 단 1초도 쉬지 않고 거래가 일어난다. 가격의 변동은 잦고 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온 신경이 코인 시세에만 머문다. 눈을 뗄 수 없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 가격도 덩달아 내려갈 것 같다. 금액이 커질수록 정도는 심해진다. 어쩔 수 없다. 돈이 걸려 있지 않나. 당시 '코인 좀비'라는 신조어가 생긴 배경이다.
열 배가 오른 상황에서 10%면 실로 큰 금액이다. 순식간에 원금이 사라졌으니 큰일이 난 게 맞다. 형수님의 그 반응이 충분히 이해됐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참을 웃던 나는 점점 선명해지는 내 미래의 모습에 웃음이 잦아들었다. 얼마 후의 내 모습을 누군가로부터 듣는 듯한 느낌. 전혀 설레지도 기대되지도 않는 그 모습이 지나치게 선명해 일말의 두려움이 생겼다.
"오늘 술이 참... 물 같네요"
2017년 12월의 한 술집. 벌컥벌컥 술을 들이켜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뒤늦게 코인 투자에 참여한 지인이다. 11월경, 파죽지세로 오르던 코인에 제법 많은 돈을 투입하곤 큰 수익을 내던 중이었던 친구였다. 얼마 전까지 대단한 수익에 행복해 보였던 친구, 제법 자신감과 확신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친구가 내 앞에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크... 술이 물 같네. 왜 맛이 안 나지?"
급격한 코인의 가격 하락에 제법 큰 손실을 내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이벤트성 호재를 기다렸는데 무슨 일인지 가격은 자꾸 떨어져만 갔다. 다시 오를 거라는 자조적인 말을 하며 괜찮다고 하는데 어째 더 힘이 빠져 보였다. 그리고 간사하게도 나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주변에서 너도 나도 코인에 투자해 치킨값, 옷값, 중고차 값을 벌었다고 했을 때의 소외감과 초조함이 개운치 않은 안도감으로 돌아왔다. 간사한 마음 같으니. 역시, 심신이 빈약한 나는 코인과 맞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각자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