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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탁기 없이 산다, 아주 잘

[홍정희의 세상살이] 세탁기 없이 살기, 이렇게 좋을지 몰랐어요

등록 2021.04.11 12:18수정 2021.04.1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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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엉덩이가 들썩인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하며 그걸 빨리 말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라는 말을 달고 살지만 그 기분이 싫지 않다. 사실은 슬플 일도, 기운 빠지는 일도 어퍼컷 날라오듯 난데없이 들이닥치지만, 동시에 또 시시한 일상에 헤헤거리기 일쑤다. 이런 하루도 저런 하루도 시시껄렁한 기록으로 남겨본다. 그러니까 어쨌든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것으로 충분하므로.[기자말]
 

우리집 책상 겸 밥상이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곳. ⓒ 홍정희

 
나는 지금 우리 집의 유일한 밥상이자 책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 글을 쓴다. 우리 집에 있는 가구라곤 중고 마켓에서 2만 원 주고 산 낮은 책장 2개, 가전이라곤 역시 중고 마켓에서 산 2칸짜리 냉장고가 전부다.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집엔 침대도, 소파도, 티브이도, 식탁도 없다. 요즘 필수라는 건조기는커녕 세탁기도 없다. 옷은 작은 방에 딸린 문 2칸짜리 붙박이장에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의 옷까지 모두 수납한다.


고백건대 대단히 거창한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두 집이긴 한데 한 집은 비워두고 한 집에서 남편과 나와 아이가 복작복작인지 도란도란인지 아무튼 살 부비며 살고 있다.

기승전결은 이러하다. 우리는 강원도에서도 조금 더 들어간 작은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곳에 남편의 직장도 있고 원래의 우리 집도 있다. 내가 올해 긴 육아휴직을 마치고 시골집과 3시간 거리의 다른 도시로 복직을 하면서 지금 집을 1년만 살 요량으로 얻은 것이다. 현재 남편은 육아휴직 후 내 직장이 있는 이곳으로 따라와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내년엔 원래 지내던 작은 도시로 남편은 복직하고 나는 그쪽 도시로 전근을 갈 계획이다.

이 집에서 1년만 지내고 돌아갈 계획이므로 최대한 물건을 새로 사지 않고 지내보기로 한 것이다. 원래 지내던 집에 침대와 식탁, 세탁기와 양문형 냉장고가 있으니 사실은 미니멀 라이프를 자랑할 깜냥이 되지 못함을 먼저 고백하고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

세탁기 없어 알게된 것
 

1년만 살 요량으로 오래된 아파트를 빌렸다. 우리집 유일한 가전인 중고 냉장고를 채워 넣으니 제법 구색을 갖춘, 불편없는 살림살이가 된다. ⓒ 홍정희

 
세탁기 없이 손빨래하며 사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 구구절절이다. 원래 살던 집에도 티브이나 건조기는 두지 않았으므로 그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이 집으로 이사하며 세탁기까지 사지 않는 일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괜찮다는 것.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 옷만 빠는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아이 옷과 본인 옷, 2인분을 소화하는 남편 입장은 모르겠으나 근 두 달 가까이 충실히 빨래를 하는 걸로 봐서 할 만하구나 짐작한다.

퇴근 후 샤워하며 그때그때 양말과 속옷, 화장실에 걸린 수건과 때때로 더러워진 겉옷을 빤다. 그때그때 빨래하니 양이 많지도 않고 그러므로 크게 힘들지도 않다. 무엇보다 좋은 건 세탁과 헹굼이 안심된다는 점이다. 손으로 푹푹, 조물조물 빠니 더러운 부분 집중 공략 측면에서 세탁기의 세척력보다 나을 터이고, 헹굼도 더 꼼꼼하게 완벽하게 하니 이건 카타르시스의 경지랄까.


또 하나, 입었던 옷을 언제 빨지 아주 신중하게 결정하게 된다. 옅고 작은 얼룩은 신경 쓰지 않고 몇 번 더 입는다. 겉옷의 세탁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혹자는 지저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샤워를 한다. 매일 깨끗한 몸으로 옷을 입으니 흰옷일지라도 목에 때가 거의 끼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특별히 바깥 활동을 많이 하는 직업도 아니라서 옷 겉에 묻는 얼룩이나 때도 별로 없다. 생각보다 옷이 깨끗하다. 며칠씩 입어도 말이다.
 

그때그때 수건을 손빨래 해 바로바로 삶아 쓴다. 뽀득뽀득. ⓒ 홍정희

 
수건 역시 모아서 빨지 않고 그때그때 한 장씩 빤다. 딱 한 장이니 수건 삶기도 부담 없이 바로 한다. 오히려 세탁기가 있을 땐 큰맘 먹어야 가능한 작업이었는데.
 
한편 폴리에스테르 등 화학섬유로 만든 옷을 세탁하면 세탁물 쓰레기로 미세 플라스틱이 물에 섞여 배출됩니다. (중략) 이 미세 플라스틱은 조개나 고등어, 멸치 등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먹이사슬에 의해 유해 물질은 다시 우리 입으로 들어옵니다.
- <똑똑한 엄마가 내 아이를 지키는 생활 방법>(진 사토코 지음)
 
환경 책이 아니라 육아서를 읽다가 반가운 글귀를 발견한다. <똑똑한 엄마가 내 아이를 지키는 생활방법>의 요지는 온갖 화학물질로부터 내 가족의 건강을 지키자는 것인데 이대로 하면 지구도 지킬 수 있겠다. 오호, 이 책 딱 내 취향이다.

이 책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사용 후 바로 깨끗이 하기가 아니라 더러워지면 깨끗이 한다'라는 생활 방식을 세탁기가 없어 의도치 않게 실천하게 된 것이다.

내 몸도 지키고 지구도 지킨다

아침에 입고 나간 옷을 저녁에 들어와 세탁기에 바로 넣는 일상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매일 세탁기를 돌린다는 주부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구나 할 뿐이다. 이상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사용 후 바로 깨끗이 하기'를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종일 입은 옷에 바깥 먼지 외에 아무것도 묻은 게 없다면 창문 열고 탁탁 먼지만 털어 내일 다시 입어도 되는 일이다. 작은 얼룩 하나 묻었다면 그 부분만 비누로 조물조물 손빨래해도 된다. 심지어 옅은 얼룩 정도야 안 빨고 몇 번 더 입은들 어떠한가.
 

세탁기, 건조기는커녕 건조대도 없다. 오래된 아파트 베란다 천장에 달린 4줄짜리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 말린다. 만족스럽다. ⓒ 홍정희

 
나는 이 부분만큼은 거창하게 이야기하련다. 세탁 횟수를 줄이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미세 플라스틱의 양도 줄여 지구를 지키게 된다. 합성세제의 잔여물이 옷과 몸에 남아 야기될 수 있는 건강 문제도 줄어든다. 이것이야말로 지구도 지키고 내 몸도 지키는 일이다.

애석하게도 갈 길이 멀다. 우리의 편리와 과시 목적으로 망가진 지구를 회복하기 위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도 줄여야 하고, 섬유의 조성도 살펴야 하고, 빨래 횟수도 줄여야 하며, 육식 지양 식습관도 실천해야 한다. 갈 길이 멀다는 건 할 일이 많다는 것이므로 하나하나 뚜벅뚜벅해보기로 한다. 같이 해보자고 이렇게 이야기하며.
덧붙이는 글 상고를 나왔다. 이십 대에 돈 벌고, 삼십 대엔 대학생이었으며, 사십에 교사와 엄마가 되었다. 매일 제자들과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 육아휴직 중인 44세 남편과 가정 보육 중인 4세 아들의 성장기가 뭉클해 수시로 호들갑을 떤다. 가까운 미래에 내가 졸업한 상고에 부임하여 후배이자 제자들과 그림책으로 수업하는 꿈을 꾸는 시골 교사 홍정희.

#제로웨이스트 #세탁기없이살기 #손빨래 #더러워지면빨기 #사용후바로깨긋이하기가아니라더러워지면깨끗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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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그리움을 얘기하는 국어 교사로,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로, 자연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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