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법원 성범죄 판결 속 빈번한 주취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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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한미연합 폭발물처리 실습 훈련 기간. 미군 여군 C는 일과를 마치고 훈련에 참가한 군인들과 삼겹살로 1차 회식을 하다가 호텔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한국군 8명, 미군 4명이 훈련에 참가했고, 방은 각각 국적별로 다른 층을 썼다.
새벽 2시, 누군가 반바지 속으로 손을 넣고 더듬기 시작했다. 1인 1실로 배정된 방. 들어올 동료는 없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보니 회식 자리에서 마주쳤던 한국군 A가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 비명을 지르자 A는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방 밖으로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주취감경 허용지대
"한미 동맹국 신뢰에 악영향을 끼친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결과적으로 A는 실형을 피했다. 2019년 8월 고등군사법원 제1부(군판사 대령 신동욱 소령 방지혁 중령 최정윤)가 원심인
공중전투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의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형 선고를 파기하고 벌금 1천만 원으로 감형했기 때문이다.
"소주 1병 또는 맥주 2병" 정도. 항소심 판결문에는 '인정되는 사실'로 A의 주량 초과 여부와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는 진술이 들어 있었다. A에게 주거침입 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없는 이유엔 "술에 취해 인지 능력이 떨어진 상태"였다는 수식어가 붙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의도로 (범죄장소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한 피고인 측의 심신 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서도, 양형 이유에서 "추행하려는 의도 하에 이뤄진 게 아니라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사실상 주취 상태를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피해자는 피고인에 대한 처벌 의지를 굽히지 않은 채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였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성범죄 사건의 주취 작량 감경. 2013년 이른바 조두순 사건으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할 때, 국회는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 장애 상태에서 성폭력 범죄를 범한 때는 감경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17년 '주취 감경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이 21만 명을 돌파했을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술 먹고 성 범죄를 저질렀다고 봐주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감시망 밖 군사법원에선 주취 감경이 가능했다. 위 사례뿐이 아니다.
'대학 합격'이라는 이유를 살펴 감형 요소로 참작한 항소심 판결도 있었다. 재판부는 이 판결에서 원심 제6군단 보통군사법원이 내린 징역 6개월 형을 파기하고 벌금 1천만 원으로 감형했다. 피해자는 난생 처음 본 가해자에게 강제 추행을 당하고, 그의 깁스한 손에 맞아 상해를 입은 상황.
고등군사법원 1부(군판사 대령 신동욱 소령 방지혁 중령 최정윤)는 2019년 2월 판결에서 "최근 주취 상태에서 이뤄지는 범행이 지속적으로 일어나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어 이를 엄히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이어진 '유리한 정상'이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대학에 합격해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보니 평소 주량보다 과도한 음주를 했다가 이 사건 범행에 이른 범행 경위에 참작할 부분이 있다"면서 더 나아가 "아직 젊은 청년으로 사회에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 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군사법원 성범죄 판결 중 주취감경 대목이 등장하는 판결문엔 반복적으로 이 문구가 등장했다.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됐고"(2019년 6월 20일 고등군사법원 2부 군판사 대령 김상환, 중령 이정민, 중령 김혜리), "술에 취해 이성적 판단을 못하고 범행한 것으로 보이고"(2019년 5월 24일 고등군사법원 특별부 대령 김상환, 중령 최정윤, 소령 방지혁) 등의 기술이다.
피해자는 '엄벌', 부대원은 '탄원'... 2차 피해 증명하는 판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