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증거로 채택됐던 '드릴'.
고등군사법원 판결문 인쇄본
'사회통념상 성적 의미를 가진 부위'란 어디일까? 손목, 종아리, 뒷목, 허리, 팔뚝, 무릎, 손... 일부 고등군사법원 강제추행 판결에서 '성적 의미가 없는 부위'로 판별된 곳들이다.
2018년 10월부터 한 달 가까이 함정 안에서 발생한 해군 강제추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건은 상관 사무실, 취사장 등등 대부분 항해 중이거나 정박 중인 함대 안에서 벌어졌다. 피해자는 20대 중반의 여성 하급자 두 사람이었고, 가해자는 그들의 상관이었다. 가해자는 일부 추행만 유죄로 인정 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강제추행 여부를 바라본 1심 재판부인 제2함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과 2심 고등군사법원 제1부의 시각은 동일했다.
(○○)는 상대방 허락 없이 만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성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거나 성적으로 민감하고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라고 보기 어려운 점.
해당 문구는 판결문에서 토씨하나 바뀌지 않고 3차례 반복됐다. 빈칸에는 각각 팔뚝과 무릎, 손이 번갈아 들어갔고, 피해자들이 추행으로 인식한 상황이 묘사돼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배 안에서 '배가 흔들린다'면서 갑자기 피해자의 좌우 팔뚝을 잡으며 만진다거나, '요즘 힘든 것 있느냐'며 의자에 앉게 한 뒤 다리를 벌려 무릎과 무릎을 접촉하고, 피해자가 쥔 핫팩 위로 손을 올려 지긋이 잡고 흔드는 등의 행위였다. 모두 당시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한 행동이다.
'브래지어 끈'을 천천히 위아래로 쓰다듬거나, 당시 현장에 있던 제3자가 '여군 앞에선 좀 부적절한 표현 같다'고 말한 "촉촉히 젖으러 가자"는 발언 등 일부 행위만은 유죄로 판단했다. 같은 부위에 대한 다른 판단도 있다. 지난해 6월 고등군사법원 제2부에서 선고된 육군 사건에선 브래지어 끈 부위에 대한 추행을 "인격적 존재로서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끼게 할 만한 것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봤다.
군사법원 재판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현장 전문가들은 강제추행에 대한 군사법원의 '복사-붙여넣기' 판결에 우려 섞인 비판을 던지고 있다. 군 특유의 상명하복 구조에서 계급 간 성 범죄 유형이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식의 판결로는 그러한 범죄들을 단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아직 일부 판결에선 군 지휘부의 의중을 기계적으로 수용해 결론을 내리기도 하고,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 권력 관계나 상황들을 고려해 판단하는 판결은 보기 드물다"라면서 "민간 법원과 군사 법원의 판결을 비교했을 때, 군사법원의 결론이 천편일률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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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가슴에 전동 드릴 돌린 상관... 황당한 1심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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