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열정에 "아, 좋다. 좋아" 하며 콩콩 뛰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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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BTS가 힘들었던 옛 시절을 얘기하며 감성에 젖은 눈빛으로 꿈 얘기를 할 때 '아미'가 아닌 나도 '어우응'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며 가슴이 울컥해지기도 했다. 아이유는 또 어떤가? 다재다능한 '끼'와 철저한 멘탈 관리까지. 꿈이란 놈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들의 열정에 "아, 좋다. 좋아" 하며 콩콩 뛰는 가슴을 부여잡기도 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이 옆구리를 툭 치며 다 안다는 투로 말했다.
"어이구, 그 마음 알지 알아. 우리 애들이 저렇게 컸으면 좋겠지?"
알긴 뭘 안단 말인가...?
"뭐래~ 난 내가 저렇게 되고 싶은데?!"
남편이 머쓱한 표정을 하고 말을 더듬었다.
"아... 그래?..."
그 뒤에 잇지 못한 말줄임표가 무엇을 말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저렇게 열정의 대명사들을 보며 꿈을 키우기엔 마흔둘이라는 나이가 거시기하다는 뜻일 것이다. 아마 남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나이쯤 되니 '꿈이란 내가 꾸는 게 아니라 자식이 대신 꾸어 주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일을 많이 겪어 왔기 때문이다.
자식보다 더 간절하고 시급한 내 꿈
꿈을 이룬 사람, 인격이 훌륭한 사람, 성공한 사람 이래 저래 다 멋져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얘기한다 '내 자식이 저렇게만 커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애도 저렇게 돼야 할 텐데..." "저런 자식을 둔 부모는 얼마나 좋겠어?"라고.
그런데 나는 모성애보다 자기애가 더 큰 인간인지 어쩐 건지, 자식보다 내 꿈이 더 간절하고 시급하다. 기필코 자식을 그렇게 만들겠다가 아니라 기필코 내가 그 멋진 부류가 되고야 말고 싶은 것이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대부분 누군가의 엄마, 회사원의 직함으로 살아간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들에 맞춰 살아가고 그 틀이 더 익숙하고 편하다. 주체적인 꿈을 갖는 건 왠지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일로 여겨진다. 도전적이고 이상적인 꿈은 어린아이들이나 청춘들의 일쯤으로 치부해 버린다.
언젠가 내가 꿈에 관한 얘기를 하자 누군가 그랬다 "너는 참 그 나이에 세상 물정 모르고 한가한 얘기만 하는구나"라고. 한가한 얘기라... 마흔에 꾸는 꿈은 한가해 보이는구나 싶어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나이와 상관없이 꿈 얘기를 실컷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은 먼 것 같다.
인생이라는 긴 선로 위에 내가 서 있는 지점은 어느 정도일까? 이제 겨우 절반쯤 지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인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꿈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도 40년을 살면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하는데 왜 내 꿈은 옛날 모습 그대로에 멈춰 있는가?
나는 어린 시절 작가를 꿈꿨다. 열심히 노력했고 지금 얼추 그 꿈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지금, 그 꿈을 리모델링해 베스트셀러 동화 쓰는 할머니라는 꿈을 다시금 꾸고 있다. 앞으로 할머니가 되려면 20~30년 남았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꿈을 이룬 아들 딸의 덕을 보며 사는 게 아니라 내 자식들이 꿈을 이룬 엄마의 덕을 보게끔 하고 싶은 것도 꿈의 일부다.
도전하고 꿈꾸는 것이 당연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