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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아야 하지만, 먹고살고만 싶지 않아서

'나 아직 안 죽었다'로 읽어내는, 서울살이 회사원과 소도시 자영업자의 삶

등록 2021.04.26 10:13수정 2021.04.2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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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흩날리고 온 세상이 연두색으로 물들 때는 바야흐로 중간고사 기간. 주말을 맞아 꽃놀이를 가는 게 아니라 나도 싫고 아이들도 싫은 학원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보면 "죽도록 싫다"는 에너지가 거대한 자기장을 이루는 걸 경험했다. 시너지 효과라는 게 이런 건가 싶은 거대한 기운에서 겨우 탈출해도 뭘 해도 풀리지 않는 피로를 느꼈다.     


차라리 내가 공부하는 게 낫지, 남을 공부를 시키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진다는 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아이들은 졸업이라도 하지만 나는 학원을 하는 동안 나의 체내에 있는 오존층이 점점 파괴되어 결국 멸망하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근원적인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눼눼, 그래 놓고 지금은 과외를 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몰라도 에세이를 무슨 재미로 읽냐?"     

아닌 게 아니라 최근에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연달아 읽고 났더니 앞으로 이런 거장들의 묵직한 소설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별 얘기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러지 
 

책 표지 ⓒ 김재완

 
그러다 김재완 작가의 <나 아직 안 죽었다>를 읽고 '그래도 에세이'다 싶었다. 에세이는 친구랑 소주 한 잔 하는 것 같은 그런 맛이 있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재미와 감동이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 않나. 막 웃다가도 눈물 한 방울 찔끔 나는 이야기, 친구 일이 내 일 같고, 친구의 고민이 내가 하는 것이 다르지 않아서 공감 팍팍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막 웃기고 뭉클하다가 별 얘기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러지, 하다가 생각해보니 사는 게 또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마, 자식들아! 엄마도 외식 좋아하신다!"

- <나 아직 안 죽었다> 중에서  
   

아들이 식당 가자는 얘기에 신발을 찾아 신는 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인데 누구한테 하는지 몰라도 킥킥거리게 되었다.      

김재완 작가는 "회사까지 가기 위해 1시간 30분 동안 매일 아침 광역버스로 즐겁지 않은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인구 26만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 나는 출근하기 위해 "순례길"을 떠나는 서울살이를 경험하지 못했다. 집에서 버스 한 코스 거리에 있는 학원에 출근하다가 그나마 지금은 집에서 과외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30년을 살았던 도시는 지금 사는 곳의 인구 열 배, 인구 밀집도도 열 배여서 체감은 백 배였다. 공원에 가도 주차할 곳이 없었고 돗자리를 다닥다닥 붙여 앉아 있다 보면 어느새 모두 모여 하나가 되고 말았다. 두류공원 야외 음악당 잔디마당에서 치킨을 먹어본 대구 시민이라면 내 말에 폭풍 공감을 할 거라 믿는다.      


그렇게 대구 시민을 내 가족처럼 여기고 살던 나는 군산에 와서 '여기가 나의 진짜 고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어버렸다. TV 화면에 나오는 외국의 강변이 평화로워 보였던 이유는 사람이 없어서였다는 걸 은파호수공원에서 깨달았다. 그 이국적인 매력에 빠져버렸고 이런 곳에서 살면 적게 벌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꿈은 현실이 되었다).    

서울 직장인 에세이, 지역 자영업자가 '극공감' 하는 이유 
 

이국적인 분위기의 은파호수공원 이국적인 분위기의 은파호수공원 ⓒ 김준정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김제평야 ⓒ 김준정

 
낯선 기분을 느낀 데는 근거가 있었다.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심지를 벗어나면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를 떠나 전라도 김제평야를 만났을 때 나는 이럴 수도 있나, 뭐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거대한 불도저로 땅 위에 솟은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밀어버린 것 같은 장면에 세계가 뒤바뀌는 경험을 했다. 나는 그런 여백이 마음에 들었고 뭔가 새로 시작되는 기분을 느꼈다.
    
김재완 작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을 할까 하는 생각에 "손가락 김밥", 묵은지 돼지고기쌈을 집에서 연습했다. 자영업은 힘들어도 내 일이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니 억울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12년 자영업을 해온 나도 과거 어느 시기에는 그런 확신과 기대에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는 김재완 작가와 소도시에서 자영업을 했던 나는 입장이 다르다. 그럼에도 책에 나온 고충이 이해가 되는 건 먹고살아야 하지만, 먹고살고만 싶지 않은 마음이 같아서일지 모른다.    
  
그동안 했던 일들을 싹 밀어버리고 나오긴 했는데... 막막했다.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해방인지 낙오인지 헷갈렸다. 매달 빠져나가는 아파트 대출금이 이토록 부담이 될 줄은 몰랐고, 돈이 안 되는 글을 쓰면서 돈 걱정을 하게 될 줄은... 돈으로 세계가 뒤바뀌는 경험을 할 줄은... 몰랐다. 

걱정, 불안, 스트레스의 삼종세트는 뭘 선택하느냐와 상관없이 따라오는 기본 옵션이라는 걸 알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할수록 힘들어진다는 걸 알았다. 조금 쉽게 가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내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평생 꿈에 그리던 44 사이즈는 되지 못하고 나이만 44를 찍은 어른답게 (제발) 하기 싫은 일도 하고 돈도 벌고 글도 쓰자. 인생에 단일 품목이란 없다.           

나 아직 안 죽었다 - 낀낀세대 헌정 에세이

김재완 (지은이),
한빛비즈, 2021


#책<나 아직 안죽었다> #서울살이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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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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