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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아들이 어머니께 직장을 속인 이유

걱정하실 게 뻔해서... 선의의 거짓말도 죄가 될까요?

등록 2021.05.07 08:30수정 2021.05.0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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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일자리를 찾았다. 정말 힘들었다. 낼모레 환갑에 특별한 기술도 없는 남자를 쓰려는 데는 없었다. 수 십군데 이력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 자괴감만 쌓여 갔다. 그럴수록 몸도 상해갔다. 만사가 귀찮으니 생활 자체가 불규칙했다. 운동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혼술도 늘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이 택시 회사였다. 과도한 공급으로 인한 치열한 자체 경쟁, 도시의 살인적인 교통난 그리고 가혹하기 짝이 없는 사납금 등으로 많은 이들이 기피하는 직업 중 하나다. 뭐 그래도 하는 수 없었다. 계속 이렇게 있다가는 몸도 마음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취직했지만 어머니가 모르는 것 
 

택시기사가 됐다. 그걸 숨기고 거짓말을 했다. 일의 고달픔보다 그게 더 마음 쓰였다. ⓒ 이상구

 
거기선 격하게 환영 받았다. 경험이라야 어렸을 적 알바 삼아 '스페어(정식 채용 기사가 결근할 경우 대타로 뛰는 기사)'로 며칠 일 했던 적 밖에 없었지만, 회사 상무라는 분은 몇 마디 묻지도 않고 바로 키를 건넸다. 그 정도로 사람이 급했던 모양이었다. 실제로 회사 주차장엔 먼지 뒤집어 쓴 택시가 몇 대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가까스로 취직에 성공했다.

어머니껜 알리지 않기로 했다. 당장 왜 그리 험한 일을 하려느냐고 펄쩍 뛰실 테니까. 당신을 잘 설득해 일을 나간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내내 걱정만 하실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도 불편해지고 일에 몰두할 수 없을 터. 운전, 특히 생판 모르는 남을 태우고 차를 몰며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말씀 드리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야 귀가하는 것에 대한 이유는 있어야 했다. 결국은 거짓말을 해야 했다. K사에 취직했다고 둘러댔다. 무료 메신저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에서 지금은 안 하는 것 빼고 다 하는 거대기업이 된, 그래서 취준생들의 로망으로 떠오른,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적 노하우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리운전에서 택시사업까지 진출한 그 회사 말이다.

내가 나가는 택시회사도 그들이 제공하는 호출(call) 시스템을 쓰고 있었다. 기사들은 T-크루(crew)로 불리며 그 회사가 준 유니폼을 입고 운전을 한다. 말하자면 내가 나가는 택시회사는 협력사나 하청업체쯤 된다. 그러니 내가 거기 취직했다는 말이 생판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택시기사, 아니 크루가 됐다. 예상은 했지만 일은 생각보다 고되고 힘겨웠다. 특히 사납금 부담은 컸다. 그걸 채우기 위해 보통 열 서너 시간 이상 일해야 했다. 각양각색의 승객들을 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에 비해 대우는 형편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어머니께 거짓말을 했고, 또 당신을 보살피는 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게 된 사정이 영 그랬다.

그러다가 또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코로나19 검진을 받으라는 통지를 받은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사찰에 잠깐 들렀는데, 하필이면 내가 간 날 확진자 한 명이 거길 들렀다는 거였다. 검사를 받는 거야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걸 어머니께 말씀 드려야 할지 말지가 고민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아직 백신 접종 전이었다.

결국 또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검사를 하면 결과를 통지 받을 때까지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어머니께 급하게 출장 갈 일이 생겼다 말씀 드리고 하루를 여관에서 지내며 검사를 받았다. 비록 그 곳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나 지난 후였지만 되도록 어머니와 떨어져 있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 였다. 다행히 그 다음날 오전에 '음성' 통보를 받았다.

선의의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결국 나는 지난 보름 사이에 거짓말을 두 번이나 한 거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며 이야기하는 게 거짓말이다. 남을 속이는 거다. 해서는 아니 된다. 성경에서도, 세상의 모든 윤리와 도덕의 교과서에서도 그건 제1의 금기다. 거짓말이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그래서 누구나 아무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하지만 그 결과는 자칫 끔찍할 수도 있는 못된 짓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 연구팀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피실험자의 60%가 10분 동안 2~3회 거짓말을 했으며, 자기를 소개할 때 일부러 과장된 거짓말을 하라고 사전 지시를 받은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지시를 받은 사람은 지레 찔끔해 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처럼 사람들은 특히 자신에 대해 얘기할 때 곧잘 무모한 허풍쟁이가 되곤 한다.

거짓말은 무의식적으로 튀어 나온다. 불리한 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다. 자신의 기억을 왜곡, 축소하거나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합리화하는 '방어기제'들이 작용하는 거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거다. 아예 현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철석같이 믿는 자기확증에 빠진 사람들도 그렇다. 그러고 보면 거짓말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맞는 듯하다.

그런 거짓말은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장 나쁜 건 악의적 거짓말이다. 남을 속여 그를 해치거나 그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얻고자 할 때 하는 거짓말이다. 상대방에게 내 수를 읽히지 않으려 위장 혹은 가장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악의가 없는,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거짓말도 있다. 그걸 특정해 선의의 거짓말 혹은 하얀 거짓말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어머니께 한 나의 거짓말은 그것이었을 거다. 고령에 병약하신 어머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 어쩔 수 없이 한 것이었으니, 이타적 이유의 거짓말로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엄연히 당신을 속인 건 속인 거였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괴테의 이피게네이아처럼(<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 물론 나는 절대 그처럼 고결한 인간은 아니지만 말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종종 벌이 아니라 상을 받기도 한다. 그걸 끔찍이 싫어하시어 10계명에도 못 박아 놓으신 하느님께서도 종종 그러셨다. 이스라엘의 남자 아기들을 살리려 이집트 왕에게 거짓말 한 시프라와 푸아 덕에 산파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직업이 됐으며(탈출기 1.15~20) 여호수아의 정탐꾼을 거짓말로 보호해 준 라합과 그 가족도 구원을 받았다(여호수아 2).

그래서 선의의 거짓말을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덕목 중 하나로 보는 이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더 길고 깊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그렇게 쉽게 단정 내릴 수 없는 문제다. 거짓말의 중독성 때문이다. 그게 처음 한 번 통하면 두 번 세 번은 쉽다. 점점 더 대범해진다. 나중엔 습관이 된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마저 모호해진다.

하얀 거짓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이 악으로 뒤바뀌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 쉽다. 최초 선의에서 시작한 거짓말도 종국엔 악의적 거짓말로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거짓말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우리 어머니의 '촉'은 특히 놀랍다.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반드시.
#거짓말 #택시기사 #하얀거짓말 #죄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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