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강에서 뛰어 노는 북한 어린이들.
조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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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날릴 때마다 조용히 사는 탈북자는 불안, 왜냐면"에서 이어집니다)
책 <탈북자>의 조천현 작가가 처음 탈북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1997년 'KBS 일요스페셜 - 지금 북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제작을 위해 탈북자를 취재하면서부터다. 북중 접경지대에 두 달여간 머물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취재했다.
하루는 압록강 강가에 북한 주민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한 선배는 배가 고파 움직일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달리 보였다. 강에서 햇빛을 쬐며 쉬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는 '북한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었다.
조 작가는 압록·두만강 변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국경의 사람들'이라는 한 주제를 다큐멘터리, 사진, 글로 변주해가며 표현했다. 그가 처음 주목한 이들은 중국에 정착하고자 했던 탈북자와 북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탈북자였다. 한국행을 택하는 탈북자를 돕는 사람은 많지만, 그 외의 길을 선택한 탈북자들에게 누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자 했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압록·두만강 변을 찾았다. 짧게는 10일 길게는 석 달씩 머무르며 북한 사람들이나 탈북자를 관찰했다. 취재 원칙은 세 부류의 탈북자를 균형 있게 만나 보는 것.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세 부류로 나눠 프로그램을 제작하려고 노력했다. 진보와 보수,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 탈북자들을 바라보고자 하는 나름의 기준이었다.
취재 현장은 종종 불안했다. 중국 공안의 단속에 걸려 테이프를 뺏기면 취재에 응한 탈북자들의 신상이 위험해졌다.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게 된다는 점도 또 다른 문제였다. 불안감은 여정 내내 그와 동반했다. 다시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온전하게 촬영본을 숨기고 지켜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지금도 여전하다. 불안함은 늘 존재했지만 견디며 일했다. 혼자 취재를 다니면서도 무섭지는 않았다. 그의 취재 현장인 동북3성과, 압록강, 두만강 일대에는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는 중국말 잘 몰라요. 모르니까 용감하죠. 그리고 북한 사람들이나 탈북자를 만나면 대화가 통하잖아요. 단절돼 있지 않아요. 나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듣고, 사람 사는 모습, 사람들이 평화롭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 그런 것들을 느꼈어요."
"묘한 게 뭐냐면, 우리는 다 북한이 무섭다고 생각하잖아요? 취재할 때 제가 정말 무서워 해야 하는 건 중국 공안이나 변방 부대예요. 날 단속하는 건 중국 공안이거든요."
중국 공안에 잡혀 3년 동안 입국을 정지당한 적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취재 현장으로 향한다. 가는 길은 매번 비슷하지만, 매번 달라지는 소소한 변화에 재미를 느낀다. 그는 "좋아하니까 하지 않겠냐"라며 "남북이 하나가 되어도 국경 사람들의 삶을 계속 기록하겠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체제나 정권에 대해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들이 평양 내부의 일을 모두 알 수 없을 뿐더러 정치 체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취재도 아니다. 그가 묻는 것은 강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