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되기 전, 김진섭이 갇혀 있던 곳 서대문형무소는 1907년 일제 한국통감부가 경성부(지금의 서울)에 지은 형무소다. 해방 뒤에도 교도소, 구치소로 쓰였다.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했다. 형무소 이전 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바뀌었다. 한국전쟁이 터진 뒤 김진섭은 이곳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다가 북으로 끌려갔다.
백창민
김진섭은 식민지 조선에서 대학도서관 '사서'로 활동한 드문 경력의 소유자다. 그가 근무한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유일하게 존재했던 '대학도서관'이다. 김진섭은 국립도서관 관장 이재욱, 부관장 박봉석과 함께, 해방 후 '한국 도서관의 3대 인재'로 꼽힌 인물이다. 공교롭게 이 세 명은 모두 납북되고 말았다.
김진섭은 대학도서관 사서에 이어 방송국 간부, 대학교수, 도서관장, 수필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뽐냈다. 도서관인과 언론인, 교육인, 문인으로 산 그는 한국전쟁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북한 당국은 납북한 대학 교원을 북조선 대학에 배치하기도 했다. 납북된 사람 상당수가 그러하듯, 김진섭 역시 납북 이후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때 김진섭의 가족이 살았던 전남 나주시 대호동 금성산에 그의 가묘(假墓)가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과 북을 넘나든 그는 '수필'이 아닌 '소설' 같은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김진섭은 김윤식이 쓴 것처럼, '비(非)생활인'의 삶을 살았다. 어쩌면 그 시절 이 땅의 수많은 사람이 겪어야 할 '일상'이었는지 모른다.
김진섭이 경성중앙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긴 후, 이화여전 출신 이봉순이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에 입사했다.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나 '시인'을 꿈꿨던 이봉순은 남녘에서 '도서관인'의 삶을 살았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김진섭은 '도서관인'으로 살면서 '수필가'로 명성을 날렸다.
다재다능했던 김진섭은 북녘에서 어떤 삶을 이어갔을까? 못다 한 그의 삶과 이야기가 궁금하다. 김진섭을 비롯하여 이재욱, 박봉석, 손진태, 이인영 같은 '납북 도서관인'의 행적 추적은 우리 도서관계의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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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해서 책사냥꾼으로 지내다가, 종이책 출판사부터 전자책 회사까지 책동네를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책방과 도서관 여행을 좋아합니다.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으로 출간)에 이어 <세상과 도서관이 잊은 사람들>을 썼습니다. bookhunter7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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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사령부를 발칵 뒤집어 놓은 대학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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