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없는거리에 앉아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어린이
김인호
초등학생들이 쏟아져 나오자 거리는 금세 명랑해진다. 저마다 솜씨를 발휘해 만든 팻말들이, 그걸 꼭 움켜쥔 아이들의 고사리손만큼이나 반짝거려 눈이 부시다.
"아이스크림이 녹으면 다시 살 수 있지만 지구가 녹으면 다시 살 수 없다!"
"도로 넓히는 건 이제 그만!"
"나무를 베지 말아주세요."
팻말에 적힌 문구를 큰소리로 외치며 오거리까지 행진해온 아이들을, 이웃집 언니 형처럼 친근한 동네 가수들이 노래로 뜨겁게 환영해준다. 음악과 어깨춤으로 들썩이는 거리 한편에는 주민 장터가 열려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물건값 흥정을 핑계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즐거운지,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빛들이 정답기만 하다.
지구의 날을 기념해 전남 구례군이 처음으로 '차없는거리'를 운영한 지난 4월 22일, 차를 멈춰 세우자 텅 빈 도로를 가득 메운 건 그동안 차의 소음과 속도에 가려져 있던 다양한 이야기와 목소리와 몸짓들이었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라는, 자칫 무겁고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놓치지 않고 읍 중심가인 구례고-경찰서 구간을 차없는거리로 만들기까지는 '지구를위한작은발걸음'(이하 지작음)의 역할이 컸다. 약 1년여에 걸친 활동 끝에 이제 막 높은 고개 하나를 넘어선 뒤 호흡을 고르고 있는 지작음 대표 문현경씨 만나본다.
차를 멈춰 세운 힘센 '발걸음'들
"지작음은 지난해 봄에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문현경, 박은주, 안상술, 윤주옥)이 모인 데서 시작됐어요. 몇 번 만나다가 이렇게 우리끼리 얘기만 할 게 아니라 뭔가 정책을 바꿀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럼 탈탄소 교통정책부터 해볼까? 해서 떠올린 게 차없는거리였죠. 차를 놓고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탄소배출이 줄어들 테니까요.
또 시골에는 보행로 없이 차도에 줄 하나 그어놓은 곳이 많은데, 큰 차가 지나가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예요. 보행 안전 면에서도 차없는거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후위기에서 탈탄소 교통정책으로, 거기서 다시 차없는거리로 과제를 구체화한 지작음은 지난해 6월 '구례 걷는 길 조사'라는 사업명 아래 보행로 조사와 보행로에 관한 학생·학부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가 이뤄진 곳은 읍내 축협오거리에서 경찰서로터리에 이르는 길과 토지면 용두정류장에서 토지초등학교 가는 길로, 이 두 구간은 '구례군 2018년 사고 다발 지점' 자료에서도 언급될 만큼 이미 그 위험성이 드러나 있었다.
평가 항목을 정리한 조사표를 들고 현장에 나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두 곳 모두 학교와 상가가 밀집돼 학생들과 어르신들의 왕래가 잦은 길임에도 제대로 된 보행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일부 구간에 보행로가 표시돼 있다 해도 홀짝제 주차로 한쪽은 늘 자동차 차지여서, 정작 행인들은 차도로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시다리 부근 오거리도 나중에 추가로 조사를 했어요. 거기도 장날에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죠. 게다가 순천과 남원으로 통하는 큰 도로가 겹치는 교차로인데도 횡단보도가 없어서 위험하더라고요.
평소에도 문제가 있다는 걸 느끼긴 하지만 아무래도 조사를 목적으로 다니다 보면 더 조목조목 보이는 게 있어요. 보도블록이 깨져 있다거나, 휠체어나 자전거로 다니기엔 턱이 너무 높다거나, 횡단보도가 엉뚱한 데 있어서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것들."
지역의 공적 활동이 학교 수업과 만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