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작곡가인 정순철, 그의 이름은 노래만큼 친근하지 않다.
월간 옥이네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엄마 한숨은 잠자고
아빠 주름살 펴져라
익숙한 가사다.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따라 불러보았을 동요. 손뼉을 치며 해맑게 웃는 아기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노랫말이다. 이 노래는 또 어떤가.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졸업식, 친구들과 함께 부르던 '졸업식 노래'다. '짝짜꿍(당시 제목 '우리애기 행진곡)'과 '졸업식 노래'는 각각 1920년대, 1940년대에 만들어져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두 곡의 작곡가인 정순철, 그의 이름은 노래만큼 친근하지 않다.
삶의 대부분을 어린이를 위해 살다 간 정순철이지만, 그는 축복 속에서 태어나지 못했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한국전쟁 때 납북됐다는 이유로 그의 이름은 자유롭게 거론되지 못했다.
방정환이 가는 곳에 정순철이 있다고 해 '방정환의 그림자'라 불리기도 했던 정순철. 소파 방정환이 '어린이의 아버지'로 불리며 오늘날 대중에게 잘 알려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을 맞아, 그늘졌던 정순철의 이름에 이제 빛을 비추어보려 한다.
최초의 어린이날 풍경
1923년 5월 1일, 온 세상 사람이 깜짝 놀랄만한 내용의 홍보지 12만 장이 경성 종로 일대 각 가정에 배포됐다.
2천 명의 소년이 시내에서 행진하려던 계획은 일제의 탄압으로 무산됐지만 천도교당에서는 '어린이날 기념 축하식'과 어린이운동 선언 낭독이, 수송동 각황사에서는 기념연설회가, 경운동 천도교당과 소공동 불교대회관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공연이 펼쳐졌다. 경성뿐만 아니라 지방 각지에도 8만여 장 배포된 것은 다름 아닌 '어른에게 드리는 글' 그리고 '어린 동무들에게'라는 제목의 홍보지였다.
[어른에게 드리는 글]
일, 어린이를 내려다 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주시오.
일, 어린이를 늘 갓가히 하사 자조 이야기하여 주시오.
일,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일, 이발이나 목욕, 의복 가튼 것을 때마춰 하도록 하여 주시오.
일,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일, 산보와 원족가튼 것을 각금각금 식혀 주시오.
일,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일, 어린이들이 서로 모히어 질겁게 놀만한 노리터나 기관가튼 것을 지어 주시오.
일,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잇지 아니하고 절믄이에게도 잇지 아니하고 오즉 어린이 그들에게만 잇는 것을 늘 생각하야 주시오.
[어린 동무들에게]
일, 돗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일, 어른에게는 물론이고 당신들끼리도 서로 존대하도록 합시다.
일, 뒤ㅅ간이나 담벽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 가튼 것을 그리지 말기로 합시다.
일, 꼿이나 풀을 꺽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일, 뎐차나 긔차에서는 어른에게 자리를 사양하도록 합시다.
일, 입은 꼭 다물고 몸은 바르게 가지기로 합시다.
'어린이'라는 말조차 없고 '애녀석, 아해놈'이라 낮추어 불릴 만큼 아동이 존중받지 못하던 시대. 아동을 일컫는 단어를 만들고 어린이에게 '경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한 것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이날 발표된 '소년운동의 선언'은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라', '만 14세 이하의 노동을 폐지하라', '배우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내용이었는데 유엔연맹에서 채택한 '어린이 권리선언'보다도 한 해 앞선 것이어서 세계적으로도 놀랄 만한 일이었다.
<동아일보> 1923년 5월 1일자 3면에서는 "『어린이의 날』-오월 일일이 왓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에게도 사람의 권리를 주는 동시에 사람의 대우를 하자고 떠드는 날이 도라왓다"고 보도하며 첫 어린이날을 소개했다. 어린이날은 당대 괄시받던 어린이들을 이날 하루만이라도 행복하게 하자는 뜻있는 어른들의 노력이 빛을 발한 날이었다.
어린이날 행사는 '소년운동협회'의 이름으로 시작돼 이후 전국적으로 그 규모가 더 커졌다. 1925년에는 어린이날 행사가 5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진행되기도 했다. 당시 어린이날 행사를 후원하는 여러 단체와 개인으로부터 166원 50전의 기부금, 현물이 들어왔고 여성단체도 행사에 참여했다. 소년회 회원들은 두부장수 종 같은 것을 꽁무니에 달고 집집마다 홍보지를 돌리며 "어린이날이요!"를 외쳤다.
어린이운동가 정순철